매일신문

보험왕 경쟁률 1만대 1…편법·리베이트의 유혹

연 100억대 매출 올리려면 부유층 고객 수시로 접대, 고액 가입땐 사례

"빛 좋은 개살구다."

한때 전업주부들은 물론 초보 보험설계사들의 우상이었던 '보험왕' 출신 김영희(가명) 씨의 하소연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연봉 10억원, 3년 연속 보험왕 등극' 등 겉으로 보이는 성공신화에 찬사를 보내지만 김 씨의 속은 속이 아니다.

보험왕들 간의 몸집 불리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간 수입의 상당액을 사례비로 지출하는가 하면 실적유지를 위해 편법영업을 불사하고도 '보험왕' 자리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분들로부터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다' '보험업계 최후의 승자다'라는 등의 칭찬을 듣지만 실상은 조금이라도 전진하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와 같은 신세"라며 "영업실적이 정체되는 순간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더불어 김 씨는 대부분의 보험설계사들이 생존을 위해 편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는 영업행태를 이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금융감독원은 16일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보험왕'들이 고액의 탈세비리 혐의에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삼성생명 등에 경영 유의 조처를 내렸다.

금감원은 이들 금융사에 대한 검사과정에서 보험업법상 보험설계사들은 대통령령에 정해진 소액의 금품을 제외하고는 보험가입 대가로 가입자에게 금품 등 특별이익을 제공할 수 없음에도 보험왕들이 실적유지를 위해 고객들에게 과도한 편의를 제공하고 지나친 사례비를 지불하는 관행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보험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을 확인했다"며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의 내부통제에 일부 문제가 있어 경영 유의 조처를 내리고 보험사가 즉시 시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불법적인 행태가 이어지는 이유를 보험업계의 구조적인 경쟁구조에서 찾고 있다. 현재 국내 보험설계사는 40여만 명(보험사에 소속된 설계사 24만여 명, 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 16만여 명)이 넘지만 보험왕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무려 1만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보험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구조다. 따라서 살인적인 경쟁은 불가피하다.

보험왕들은 평균 100억여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자비로 법무사나 세무사 등 직원들을 고용하는가 하면 의사, 기업체 사장 등 부유층 고객관리를 위해 골프, 리조트 접대 등을 수시로 해야 한다. 더욱이 실적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에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현장에선 고객이 거액의 보험계약을 하겠다면서 리베이트를 요구하면 거부하기 쉽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성실하게 고객들을 관리하며 내실 있게 실적을 유지하는 보험왕들도 많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부적절한 관행의 유혹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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