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새해를 맞으면서-切問而近思

'子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널리 배워서 뜻을 두텁게 하고 절실하게 질문하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 인(仁)이 그 속에 있느니라"고 하셨다.('논어'의 '자장편' 중에서)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는 힘겨웠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언제나 '절실하게 질문하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1년이란 시간을 걸어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풍경에 머뭇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풍경이 말을 걸어옵니다. '2013 대구 학생 저자 책 축제'. 이미 몇 번 만났던 풍경이기에 익숙할 터인데도 책 축제의 풍경은 늘 새롭습니다. 언제나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올해 책 축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행사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책을 통해 즐기는 축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플래시몹, 마술, 콩트, 인형극, 뮤지컬 등을 책쓰기와 결합하여 함께 즐기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학교나 동아리를 지정해 전시하기보다는 자율적으로 참가를 유도한 것도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습니다.

내빈들이 많이 방문하는 첫날만 붐빈 것이 아니라 3일 내내 책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사람으로 전시장은 가득했습니다. 전시장 부스마다 책을 쓴 학생들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나만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짧은 시간에 책쓰기와 따뜻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이들은 미니북을 만드는 체험에 참가했고, 어른들은 차를 마시고 전시된 책을 읽으며 행복해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행복하고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추억으로 자라나는 그것이 축제의 본질입니다. 축제는 가장 자유로운 풍경입니다. 자발성이 전제되지 않은 축제는 이미 축제가 아닙니다. 책 축제가 드디어 진정한 축제로 자라날 수 있는 방향을 찾은 셈입니다.

책쓰기는 긴 호흡으로 걸어가는 정책입니다. 앞으로만, 위로만, 빨리만 달렸다면 이미 몇 번이나 쓰러져서 일어나기 어려웠을 겁니다. 몇 년 동안 지속되면서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나는 정책이어서는 안 됩니다. 책쓰기 정책을 그만하고 새로운 정책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도 듣습니다. 국어교육이, 영어교육이, 수학교육이 시대가 달라진다고 없어지진 않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이 지닌 풍경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책쓰기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하는 시대만큼이나, 자라는 아이들만큼이나 책쓰기는 다른 모습의 정책으로 성장해나갈 것입니다. 그것으로 아이들이 행복하고, 그것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정책이 책쓰기입니다.

나아가 책쓰기로 인해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치는 순간 아무리 의미를 지니고 있어도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정책은 그것이 이루어낸 꽃만 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지닌 뿌리를 봐야 합니다. 그 뿌리에서 수많은 줄기와 가지가 자라나고, 모두가 다른 잎을 만들고, 모양이 다른 꽃을 피웁니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책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바람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건 정책이 아닙니다. 이벤트일 뿐입니다. 교육은 이벤트가 아니라 정책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교육이 아닌 학교 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책쓰기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책 축제 기간 내내 우리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바로 그 풍경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책쓰기에 대해 '切問而近思'하려고 합니다. 뱀의 해가 가고 푸른 말의 해가 왔습니다. 대구 교육도 힘차게 달리는 말처럼 더욱 전진했으면 합니다. 선생님들, 학생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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