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많은 고교들이 특색 있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특목고나 자사고 등 유명 학교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아무런 여과 없이 도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이나 학생들의 수준, 지역의 교육 여건 등에 대한 분석 없이 '사돈 따라 거름 지고 장에 가는 격'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의 옷이라고 해도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다면 되레 스타일을 망치듯 현실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게 만들기 쉽다.
입시에서 대학이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학교 교육과정을 현실에 맞춰 설계하고 운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수능시험에 대비하는 교육과정이 중요하다 해도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정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진로집중형 교육과정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특히 일반고 경우 단순히 진로를 직업과 연관시키는 초보적인 진로교육 형태에서 벗어나 학습과 연관된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영역에서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기존의 수능형 교육과정과 차별화되는 토론형 수업, 실험'실습 중심의 학습이 이루어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많은 고교들이 진행하는 과제연구(R&E) 프로그램의 경우 성과 위주의 스펙 쌓기로 진행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진로 연장선에서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수학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교육과정 연계가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학생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학교의 상황과 학생들의 현실, 주변 여건 등을 재점검하는 한편 새로운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해 외부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등 입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입시 결과가 좋은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온 성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올해 일반고 교육력 강화 방안 중 하나로 각 학교의 교육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시작된다. 하지만 상당수 학교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예산을 소모하는 데 중점을 두는 듯해 안타깝다. 학교의 상황과 학생들의 요구를 파악해 학교에 진정 어울리는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학교 구성원 스스로 머리를 맞대지 않는다면 일반고 교육력은 앞으로도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김기영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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