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는 시장은 스스로 작동하기 때문에 외부의 개입은 필요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자유방임주의에 맞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작동을 멈춘 시장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승수효과'(乘數效果)다. 즉 정부가 내수 경제에 돈을 지출함으로써 총수요(투자+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정부가 창조적으로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른다면 항아리에 돈을 넣어 땅속에 묻어버리는 것만으로도 경제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어디에건 돈을 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정부가 돈다발을 땅에 묻으면 사람들은 이 공돈을 찾으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돈을 찾으려면 땅을 파헤칠 인부가 필요할 것이고, 인부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식료품 업자와 집을 빌려준 사람은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상품을 구입할 것이고… 이렇게 해서 경제는 다시 돌아간다!
케인스의 이론은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에 도입돼 큰 효과를 발휘했다. 유럽 국가가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풍요의 60년대'를 일궈낸 것도 케인스를 따른 결과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황을 치유하기 위한 각국의 처방도 같았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와 '케인지언'을 당황하게 한다.
김경근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과장과 염명배 충남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1970~2011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정부와 민간 투자 및 소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투자가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게 아니라 몰아내는 구축효과가 나타났으며, 정부 소비 역시 민간 소비를 보완하는 게 아니라 대체했다고 밝혔다. 정부 투자와 소비가 민간의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오히려 저해했다는 것, 다시 말해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승수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닌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불황 탈출을 위한 마땅한 처방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처방도 이제 약발이 다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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