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백일장] 수필-메주 쑤는 날

안영선(대구 수성구 청수로)

볕 좋은 날을 가려 뽑아 이른 아침 엄마가 맑은 샘물을 길어와 콩을 씻어 가마솥에 불을 지피면 아버지는 볏짚을 추발하고 메주 각시(볏짚으로 만든 새끼줄 모양의 메주를 다는 끈)를 만든다. 아버지는 나일론 끈이 편해도 고초균이 없어 짚이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솥뚜껑이 열리고 하얀 김이 퍼지면 콩 냄새는 집안 구석구석으로 번지고 삶은 콩들이 대소쿠리에 퍼 담겨 콩 물이 주르륵 내릴 때 콩 물도 쓸 곳이 있다며 버리지 말고 잘 받아 두라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고구마를 포일로 싸서 아궁이에 묻느라 바쁘다. 콩 찧는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린다. 메주 틀을 씻으시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길다.

"너무 곱게 빻으면 안 된다. 통 콩이 드문드문 있어야 해. 정성을 들여 빻아야 하지 일 년을 두고두고 먹을 장인데…."

드디어 삼베 보자기가 깔리고 꼭꼭 밟아 메줏덩이를 만든다. 누가 못난이를 메줏덩이 같다고 했던가. 반듯하게 메주 틀에서 나온 콩 뭉치로 메주가 되는 순간 식구 모두 숨을 죽이고 들여다본다. 넌, 이제 콩이 아닌 메주가 되었다. 이제 시렁에서 한 달을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

시렁이 휘어지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해 질 녘에야 매주 만들기가 끝난다. 그릇들을 씻고 "올해 메주는 잘 되었다"는 할머니의 평가가 내려지고서야 웃으면서 편안히 저녁상에 마주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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