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있는 녀석들을 묻으려니…" 가슴 친 양계농

경주 AI 매물처분 현장

경북지역에 첫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9일 경주시 천북면 희망농원 인근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닭을 포대에 담아 살처분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경북지역에 첫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9일 경주시 천북면 희망농원 인근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닭을 포대에 담아 살처분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9일 오후 2시 경주 천북면 신당리 대규모 가금류 사육농장인 희망농원 앞. 전날 이 농장 안에 있던 한 농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H5N8형) 바이러스가 최종 검출되면서 이곳에는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매몰 처분을 위한 인력 집결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오후 매몰 처분에 투입된 인력들은 보건소에서 타미플루를 투여받고 왔다. 고글, 마스크와 덧신 등으로 중무장한 매몰 인력들은 복장점검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현장으로 들어갔다. 경주시청 공무원 및 군인 등 400여 명이 매몰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 매몰 인력들은 복장점검이 끝나자마자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매몰 인력들은 닭을 한 마리씩 끄집어내 자루에 담았다. "꽥꽥", "꽥꽥". 곳곳에서 매몰 인력들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닭들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재래식 농원의 계사는 3, 4단인데 현대식 농원은 6, 7단 높이로 계사를 올려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했다. 이 때문에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공무원은 높은 계사에서 닭을 내리다 사다리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수백 개의 마대자루가 꽉꽉 들어찼고, 매몰 인력들은 이내 마대자루를 차에 실었다. 대기한 차량은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형 트럭들은 마대자루를 실은 채 좁은 길을 빠져나와 인근 대형 덤프트럭에 마대자루를 실었다.

중장비가 동원된 희망농원 앞에는 굴착기가 동원돼 있었다. 굴착기 기사들은 4~5m 깊이의 구덩이를 팠다. 또 다른 인력들은 추가 오염을 막기 위해 4겹의 비닐을 땅에다 겹겹이 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파놓은 구덩이 주변으로 덤프트럭이 몰려들었다. 이제 싣고 온 닭을 차례로 묻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마대자루가 구덩이로 밀려들어가자 아까 농장에서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자가 듣기엔 비명에 가까운 닭울음 소리였다. 직원들은 덤프트럭에 실린 마대자루를 구덩이에 차례로 밀어 넣었다.

일부 끈이 풀린 마대자루에서 살아 있는 닭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살기 위해 쏟아져 나온 닭들은 마지막으로 도망을 시도했다. 매몰 인력들은 더 바쁘게 움직였고 그들의 손에 다시 잡힌 닭들은 마대자루로 밀려들어갔다. 닭들은 더 도망갈 곳이 없었고 땅에 묻혔다.

오후 7시까지 계속된 작업 과정에서 매몰 인력들은 몹시 힘들어했다. 작업을 하던 한 군인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살아있는 닭을 매몰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같이 일했던 한 동료는 꿈에서도 닭이 보인다더라"고 하소연했다. 농가의 농민들은 가슴을 쳤다. 한 농민은 "우리 집의 닭은 AI 확정이 안 됐는데 매몰 처분이 될 예정"이라며 "살아 있는 닭이 매몰 처분되는 것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미경 경주시 보건소장은 "작업에 투입됐던 직원들은 깨끗이 목욕을 한 뒤 최소한 7일 이내에는 무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권유하고 있다"며 "작업자들이 살아있는 닭을 잡아서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후 관리 차원에서 작업자들을 계속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상 최대의 가금류 매몰 처분이 이뤄지고 있는 경주의 축산농가들은 AI가 이미 발병한 경기도에서 닭 분양이 이뤄지고, 이를 방역당국이 승인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 농민은 "비상 방역 체제를 구축한다고 말을 해놓고 결국 전염을 통해 경북도에서도 AI가 발병했다"며 "허술한 방역체계를 갖춘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끈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