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삶은 여행의 연속이다.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삶이란 여행은 끊임없이 낯선 것들과 마주하는 과정이다. 그 낯섦이 두렵다고 한자리에 머문다면 결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없다. 그 여행에 든든한 '트레블 메이트'가 있다면 그 과정은 좀 더 수월해진다. 새로운 것을 찾아 함께 삶을 여행하는 의사 부부가 있다. 아내는 대학병원 교수직을 그만두고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을 돕는 비영리단체의 이사로, 남편은 이 단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5일 오후, 대구 중구의 공감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직업의 틀을 깨고 사는 부부의 '인생 여행기'를 들었다.
◆의사에서 비영리단체 이사로
봄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봄날 기분이 그러하듯,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새터민을 돕는 비영리단체인 '(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공감'(이하 공감) 김성아(46'여) 이사의 인생 줄거리를 간략하게 알고 있었던 터라 재미있는 '사람 책'을 읽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남편 이종우(46) 원장의 인상은 의사보다 예술가에 가까웠다. 패션을 아는 사람은 머플러로 멋을 부린다. 이날 머플러를 두른 김 이사도, 이 원장도 패션의 멋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비단 겉모습뿐이겠는가. 그들의 인생에도 '멋'이 있었다.
공감 게스트하우스를 설명하지 않고 부부의 인생을 말할 수 없다. 숙박료 20%가 새터민 사업 기금으로 사용되는 이 게스트하우스는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1층은 북카페, 2층은 소회의실, 3~5층은 게스트하우스인 복합문화공간이다. 5층짜리 이 건물의 주인은 바로 이 원장. 그는 1~2층은 5년간, 3~5층 게스트하우스는 1년간 공감에 무상 임대할 만큼 새터민을 향한 마음이 깊다.
어떻게 새터민과 인연이 닿았을까. 이야기는 2007년으로 되돌아갔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했던 김 이사가 돌연 사직서를 냈다. 의대 졸업 뒤 꼬박 15년간 앞만 보며 일했던 김 이사가 일을 그만둔다고 하자 주변인들도 놀랐다.
그는 노동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의사였다. 김 이사는 대학병원에 일하기 전 처음 시작했던 일을 '공장 의사'라고 표현했다. 첫 직장은 구미의 한 대기업 공장이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살피고, 직업병을 발견한 뒤 진단'치료하는 일을 한다.
"'직무 스트레스 연구회'에 들어가서 정신과 의사, 사회학자 등 여러 사람과 다학제간 연구를 처음 시작했는데, 일과 가정의 양립이 직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하지만 나는 아이들보다 내 일에 집중하며 살았던 거죠. 큰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였기도 했고. 나와 가족을 위해서 한 템포 쉬는 것이 필요한 시기였어요."
◆나를 찾은 길, 산티아고
같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이 원장이 아내의 사직에 반기를 들었다.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냉정한 남편이었다. 이 원장은 "직업환경의학과 일이 어려운 것은 맞다. 노동자를 위해 근로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관리자나 노동청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들은 근로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의사다. 단순히 일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그만둔다면 반대한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부부는 사직에 합의했다. 단 '의사 일 대신 평생을 헌신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2007년 그해 구미에서 살았던 네 식구는 대구로 다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김 이사의 삶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여행자와 만남이었다. 계기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2009년 여행자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하는 이 사이트를 우연히 알게 됐고, 대구를 찾은 전 세계 여행자를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2009년 2월 매일신문에 난 '카우치 서핑' 소개 기사를 보고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첫 서퍼는 두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청년 레미와 여자친구 델핀이었어요. 1년간 세계 여행을 하던 이 커플은 레미의 생모를 찾으러 한국에 왔었어요. 자신이 부모가 버린 아이인지, 아니면 길을 잃은 아이인지 궁금하다면서요."
김 이사는 대구에서 세계 여행자를 받아들이는 데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태어나 처음 혼자 떠난 곳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길도 사람도 언어도 모든 것이 낯선 그곳에서 김 이사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산티아고에서 굉장히 큰 두려움을 만났어요. 까미노 첫날 설레서 잠도 거의 안 자고 새벽 5시 전에 숙소를 나섰어요. 길은 깜깜하고, 사람은 아무도 없고. 30분간 어둠 속에서 혼자 빵을 뜯어 먹으며 사람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그 길은 나 혼자 가야 하는 길이었어요. 첫 걸음을 내딛는데 두려웠어요. 하지만 한 발 더 내딛으니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때 큰 경험을 했어요. '그래. 뭐든지 와라. 내가 못할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을 품고 다시 돌아왔어요."
두려움이 사라지자 갈등도 사라졌다. 당시 북한이주민지원센터는 새터민 사업을 특화하기 위해 모 법인 설립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대구로 온 뒤 이 원장은 새터민 성교육 강의를, 김 이사는 새터민 건강관리 봉사를 하며 연을 쌓았던 터였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 허영철 소장이 "함께 해보겠냐"고 물었고 김 이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가 2010년 9월이었다.
◆'시대'가 엮어준 사랑
인터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아직 미혼인 기자는 부부의 연이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인연은 항상 가까이 있었다. 이들은 캠퍼스 커플, 'CC'였다.
"오늘처럼 따뜻한 봄날이었어요." 이 원장이 운을 뗐다. 경북대학교 의대 86학번 동기였던 이들은 1989년 삼덕동 의대 교정에서 처음 말을 섞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친 뒤 의대에도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무렵 서울에는 진보 의사 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가 생겨났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싹튼 사랑이었다.
이 원장은 "아내는 나보다 학생 운동에 먼저 뛰어든 '진보 여성'이었다. 똑똑하고 당찬 여자 동기라고 생각하고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그날 처음 이야기를 나눠보니 참 편하더라. 그때 내가 '우리는 전생에 남매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막 웃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랑은 봄날 찾아왔지만 의학도의 연애는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논하고, 시대를 걱정하는 건설적인 데이트는 주로 소주와 막걸리, 고갈비(고등어 양념구이)를 앞에 두고 이루어졌다. 주된 대화 주제는 '앞으로 어떤 의사가 돼야 하는가'였다. 이 원장은 아내와 연애하며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초 의과대학 졸업준비위원회 일을 했던 이 원장은 진보적인 의사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1993년 졸업하며 '올바른의료실현을위한 경북대의사모임' 조직을 주도했다. "70명이 모였고, 당연히 아내도 같은 회원이었어요. 1993년 결혼과 동시에 이 모임을 만든 셈이죠." 그리고 2년 뒤 이 원장은 대구경북인의협을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창립했다.
◆끝나지 않은 여행, '공감'을 위해
부부의 연처럼 새터민과 만남도 예정된 인연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살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말을 만든다면 사명감, 운명 같은 단어를 쓸 수 있겠지만 이런 단어로 설명이 부족해요." 새터민과 만남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냐고 묻자 한참 고민했던 김 이사가 내놓은 답변이다.
그는 새터민 가족들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통일부 소속 기관인 하나원에서 새터민들을 대구로 데려오는 날, 그는 허영철 소장과 함께 버스를 타고 경기도 안성으로 갔다. 수백 명의 새터민을 그곳에서 만났을 때 김 이사는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많죠. 새터민 가족들을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미안함과 울컥하는 동정심이 아니었어요. 이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목숨 걸고 우리나라로 온 사람들이에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맞지만 그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죠."
올해로 5년째 접어든 공감의 목표는 뭘까. 마지막 질문은 이 원장에게 던졌다. 모든 답변은 '여행'과 엮였다. 국내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국외에서는 의미 있는 공정 여행을 떠나는 'NGO 여행사'를 만들어 소통하는 것이 목표다. 공감 게스트하우스가 대구 시내 중심에 위치한 것도 '소통의 역할'을 위해서다. 대구 중구는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새터민들을 중심으로 모으고, 시민과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최적의 위치다.
"새터민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거에요. 공감의 기본 개념은 여행이고, 여행은 곧 만남을 뜻합니다. 새터민은 아직 우리 사회의 소수자고 소외된 사람들이죠. 앞으로 공감이 소외된 이들과 세상이 함께 어울리고 만나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만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고, 소통이 없으면 공감도 없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공감을 위해, 이들 부부의 인생 여행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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