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지하철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중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어느 분이 보내 준 수필집을 서서 몰두해 읽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앞에 앉은 청년이 일어났다.

그가 내리는 줄 알고 그 자리에 앉아서 계속 책을 읽었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책을 덮고 지하철 문 입구 쪽으로 갔다. 나는 약간 놀랐다. 그 청년도 내리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모양이구나.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으니 미안하구나.'

지하철을 내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청년 쪽으로 다가갔다. 왼쪽이 불편한 듯 걷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다. 장애인한테 자리를 양보받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책에 몰두만 하지 않았어도 그것을 알고 그가 계속 앉아가도록 권유했을 것이다. "자리를 양보해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그가 한 번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빠르게 쩔뚝거리며 앞서 걸어갔다.

나는 장애인, 특히 몸이 불편한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내 손을 거쳐 간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가슴이 철렁한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너무나 많은 머리 다친 환자들을 수술해서다.

얼마 전에도 젊은 여자가 두개골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왔다. 32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수술한 환자였다. 머리뼈가 박살 나고 출혈성 뇌손상이 심해 두개골 일부를 버렸다고 병상기록에 적혀 있다. 나이를 보니 서른여섯이니까 네 살 때 수술을 받은 것이다. "잘 살아오셨는데 지금 왜 머리뼈 성형수술을 받으시려고 해요?"

"제가 죽기 전에 수술을 받게 해주려고요. 너무 겁이 났어요. 수술을 받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고요. 이제는 해주어야겠어요. 저도 앞으로 얼마 더 살지 모르잖아요." 같이 온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3차원 두개골 CT 사진을 찍어 결손 부위를 보여주고 수술 날짜를 정해서 입원장을 주었다. 모녀가 진찰 방에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머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을 때 그녀들의 삶에도 분명 두개골에 생긴 결손만 한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곳으로 한숨과 원망과 한이 왔다갔다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이제 그곳을 막아 주려고 한다. 그 수술이 그들의 마음과 삶에 생긴 구멍도 함께 막아주었으면 한다.

나도 반성한다. '나도 모르게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서 양보를 받아 지금까지 편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남의 한(恨)의 덕으로 지금까지 잘 먹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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