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아빠, 유치원생 3대가 함께 사는 채린이네 집에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B형 간염과 C형 간염으로 간이 망가진 할머니 지수미(52) 씨, 할머니에게 간이식을 해준 뒤 계속해서 합병증에 시달리는 아빠 정지현(28) 씨. 아빠는 아픈 몸 때문에 일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고, 할머니는 자신에게 간을 이식해준 뒤 나날이 수척해져 가는 아들을 보며 매일 마음 아파한다.
아픈 할머니와 아빠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채린이는 24시간 어린이집이나 지인의 집에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날이 많다.
◆홀로 두 아들 키운 할머니의 망가진 간
할머니 수미 씨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수미 씨는 29살 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지고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친정의 가세가 기울면서 아이들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젊은 여성 혼자 아들 둘을 키우는 일은 힘겨웠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면 고생도 끝날 거란 일념으로 살아왔다.
정신없이 사는 동안, 두 아들과 본인의 건강은 조금씩 망가져갔다. "내 건강은 물론이고 아이들 끼니를 제대로 챙겨주질 못했으니까요. 아이들이 건강하지 못한 게 결국은 제 책임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항상 피곤함을 느꼈지만 2년 전에는 코피를 자주 쏟고 다리가 퉁퉁 붓는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간기능 이상으로 의식이 흐려지는 간성혼수 증상까지 겪으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수미 씨의 간이 B형 간염과 C형 간염으로 인해 망가졌고, 간경화가 심해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수미 씨는 간이식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몇천만원이나 하는 수술비용 부담이 너무 컸고, 혈육인 두 아들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B형 간염 보균자인데다 폐결핵까지 앓고 있었고, 작은 아들인 지현 씨도 몇 년 전 기흉수술을 하고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지현 씨는 어머니를 위해 선뜻 간이식을 결정했고, 2012년 12월 수미 씨는 작은아들의 간을 이식받았다.
◆간이식 합병증으로 일조차 할 수 없는 28살 아빠
아빠 지현 씨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요리사를 꿈꾸던 지현 씨는 19살 어린 나이에 채린이의 엄마를 만났고, 22살에는 아빠가 됐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채린이와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채린이의 외가에서는 요리를 배우며 일하는 지현 씨를 탐탁지 않아 했고, 채린이 엄마는 우울증을 앓았다.
채린이가 갓 돌이 지났을 때쯤, 엄마는 채린이와 지현 씨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갔다. 당시 둘째 아이가 배안에 자라고 있었지만 엄마는 아이까지 지워버리고는 도망쳐 버렸다. "원래 외로움이 많고 우울해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래도 둘째를 좀 키우고 나면 맞벌이해서 잘 살아보자고 얘기했었는데…."
지현 씨는 홀로 채린이를 키울 수 없어 어머니 수미 씨의 손을 빌렸다. 어머니에게 딸을 맡겨두고 주방보조 일을 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간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꺼이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5, 6시간이면 끝나는 수술이 13시간까지 이어졌다. 지현 씨의 간을 감싸고 있는 혈관이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수술 중에 출혈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술 후 6개월간 쉬면서 체력이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지현 씨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황달증세가 심해졌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병원을 찾았더니 수술 합병증으로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운반하는 관인 '담도'가 막히는 증상이 발견됐다. 담도를 넓히는 시술을 받은 뒤 일터로 돌아갔지만 또다시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 2012년 수술 뒤 지금까지 3번이나 담도에 문제가 생기면서 지현 씨는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쉬어야 상태가 좋아진다는데 당장 병원비는커녕 밥해 먹을 돈도 없으니 일을 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이곳저곳 떠도는 딸
아빠 지현 씨는 간이식 합병증으로 담도에 이상이 생기면서 지난 1년간 3번이나 입원을 하고, 담도를 확장하는 시술을 받을 때마다 수백만원의 병원비가 나왔다. 할머니 수미 씨도 간이식을 받은 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약을 타는데 이 비용도 수십만원이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세 가족이 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월세 30만원은 70대인 수미 씨의 어머니가 내주고 있다. 어머니도 기초생활수급비와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판 돈이 생활비의 전부이지만 젊은 나이에 일조차 할 수 없는 딸과 손자를 위해 자신이 덜 먹고 더 일해서 월세를 낸다. 수미 씨는 "이 월세방마저 없을 때는 갈 곳이 없어서 어머니가 사는 원룸에 세 가족이 얹혀살았다. 어머니에게 고맙고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아빠의 힘겨운 삶에 채린이는 유일한 기쁨이다. 하지만 채린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어 어린이집이며 지인들의 집에 맡기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좋은 환경에서 채린이를 키우고 싶지만 할머니도 아빠도 일을 하지 못하고 병원만 왔다갔다해야 하는 상황이라 함께 지내는 시간도 많지 않다. 지현 씨는 "얼른 건강해져서 항상 꿈꾸던 요리사로 일하고 싶어요. 어머니도 잘 모시고 채린이도 잘 돌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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