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도 훨씬 가벼운
문짝 하나 없는
껍질뿐인 집을 이고
흡사
팽이가 팽팽 돌다가 쓰러져
오래 잠드는 것처럼
오늘밤도 느릿느릿 달팽이는 기어서
어느 꽃그늘 아래 잠드는가
-시집 『꽃을 물었다』, 시인동네, 2014.
박정남의 시편들 가운데 독자에게 가장 친절한 시가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그의 시는 밝음보다는 그늘, 혹은 무의식의 언어들이 지배적이었다. 육체에 숨겨진 그늘이 내지르는 아픔의 소리 같은 것이었다. 첫 시집 '숯검정이 여자'가 그러했다. 그로 인해 다소 난해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꽃을 물었다'의 첫머리에 나오는 시다. 얇은 천 조각이나 신문지 하나 들고 거리에서 잠드는 노숙인의 모습을 달팽이에 비유했고, 또 그 이름이 비슷한 누워 있는 팽이에 비유했다.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노숙인의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런 노숙인의 삶이 너무나 정교한 언어로 빚어졌기에 힘겹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꽃그늘 아래 잠든 달팽이의 이미지가 평화롭기까지 하다.
슬픔의 크기가 울음소리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소리 죽여 우는 것에서 더 큰 슬픔이 느껴진다. 노숙인을 노래했지만 노숙인은 노숙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근원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인간 존재의 고독한 모습, 그 근원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시의 의미는 다양하다. 다른 의미로 확장한다면 노숙인 문제는 노숙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는 개인과 개인이 관계 맺으면서 이루는 생명 공동체다. 노숙인 문제는 우리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 공동체의 문제다. 시인의 시선은 선하여 아픈 곳, 어두운 곳에 닿아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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