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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타이타닉호 침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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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 동안 텔레비전 앞에서 눈물을 훔치지 않은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시신이라도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실종자 가족을 본 사람들은 금방 눈물을 글썽거렸을 것이다.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고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가슴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구조적인 악의 덩어리를 보면서, 지금까지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이런 비리를 파헤치지 못한 국정감사는 왜 했는가, 경찰과 검찰은 왜 이제야 압수하고 체포하고 영장신청하고 법석을 피우는가, 또 언론도 왜 이제야 '해피아'가 눈에 띄어 이리 파헤치고 저리 파헤치는가,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약 100년 전 이보다 더 큰 침몰사고가 있었다.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던,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호화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처녀 항해하면서 침몰하여 2천224명의 승선자 중 약 1천500명이 희생된 사고였다. 온 세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사상 최대 해난사고의 원인은 이번 세월호 침몰의 원인인 비리와 적폐라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였다. 빙산을 제대로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고 뒤에도 왜 구명정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느냐, 왜 빙산이 떠 있는 바다를 전속력으로 달렸느냐, 해운사 사장인 이즈메이는 무슨 낯짝으로 살아왔느냐, 왜 1등실 승객을 먼저 구조하여 인간차별을 했느냐며 사람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이 타이타닉호가 10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또 그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것은 그 사건의 충격과 희생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실화, 다큐멘터리, 소설, 시, 연극, 음악, 뮤지컬, 무용, 영화가 쓰이거나 제작되었고, 기념박물관이 세워졌고, 완구와 테디 베어가 시판되었고, 게임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담은 영화는 이 사고의 생존자가 직접 대본을 쓰고 출연한 무성영화에서부터, 1995년 12억 명이 관람하여 당시로선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타이타닉호'까지 여덟 편이나 된다. 그 배만큼이나 거대한 '타이타닉 문화', '타이타닉 산업'이 생겨난 셈이다.

이 타이타닉 문화와 산업에는 다분히 상업성이 개재되어 있지만 해난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 사실 이 참사를 계기로 항해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서양 문화예술 곳곳에 녹아 있어 이제 그 위험성에 대한 홍보는 손을 놓아도 될 듯하다.

필자가 매년 학생들과 같이 읽는 토머스 하디의 시 '둘이 하나로 합칠 때'도 이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전례 없는 거대한 호화선박을 건조할 때에는 분명히 인간의 허영심과 자만심이 작용하였으며 그 때문에 그 선박에는 살(煞)이 끼었다는 내용이다. 그 배를 3년에 걸쳐 크고 화려하게 건조하는 동안 그 살은 '먼 그늘지고 조용한 곳에서 빙산'으로 몸집을 키웠다고 한다. 이 두 거대한 덩어리 즉 인간 허영의 구조물인 타이타닉호와 살의 덩어리 즉 빙산은, 본시 하나였지만 이처럼 따로 떨어져 생겨나, 다시 하나로 만나는 순간에 바로 그 큰 재앙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타이타닉호는 바다 밑바닥에서 인간의 허영심이나 비웃는 쓰레기더미로 너울거린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번 세월호 침몰도, 탐욕과 그것에서 비롯된 비리, 위선, 수뢰, 유착 등 때문에 살이 끼어 일어난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섬뜩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제도와 관행을 철저히 점검하고 비리를 가려내어 단죄해야겠지만, 늘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재발을 방지하는 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것에는 예술 특히 대중예술이 큰 몫을 할 수 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하고 울부짖다가 곧 잊어버리면 곤란하다. 이 사건을 담은 예술적 기념물을 세우고, 우리들의 아픔을 달래면서 인간의 탐욕을 꾸짖는 불멸의 예술작품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 교과서에 실어 모든 국민이 꼭 익혀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어른들의 죄책감을 털어내는 최소한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더더구나 한국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이라는 위험한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가.

박재열/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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