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합법적 살인, 사형… 5개국 13명 연구 논문집

사형에 유리한 한·중·일 역사·법의식부터 살펴야 존폐의 참된 논의 가능

동아시아의 사형/ 도미야 이타루(富谷至) 엮음/ 손승회 옮김/ 영남대학교출판부 펴냄

사형은 형벌체계 가운데 가장 엄중한 형벌이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왜 그러한 살해 수단을 취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당시의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처형을 인식했는지, 권력자가 살인에 대해 어떠한 이유와 의미를 부여했는지, 사형이 어떠한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사형의 집행 양태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했다는 사실은 결국 사형의 의의, 사형에 대한 사회의 의식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왜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 축과 서양과 동양이라는 공간 축 위에서, 법제도의 분기와 법문화의 변천에 나타난 다양한 과정을 역사, 사상, 관습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해답을 찾고 있다.

이 책은 2008년 같은 제목으로 일본 교토대(京都大)에서 출판된 책을 완역한 것이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간에 걸쳐 계속된 국제공동연구 과제인 '동아시아의 법과 관습-사형을 둘러싼 제 문제'의 성과를 정리한 논문집이다. 13명에 이르는 저자들은 일본,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중국 등 5개국 출신들로 역사학, 법학, 사회학, 종교학, 인류학, 철학, 민족학, 어학 분야의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형벌과 행형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그로부터 법제도, 법사상, 법사회학, 법과 종교 등 종합적인 법문화를 해명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국제앰네스티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사형제도 존치국은 67개국이다. 사실상의 폐지국은 130개 국가다. 그러나 사형을 폐지한 유럽 여러 나라와 달리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은 법정형벌로 사형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대표 저자인 도미야 이타루는 이 책의 서문에서 사형의 존폐를 고찰할 때에는 동아시아 사형의 역사, 죄와 벌의 법의식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술적, 실증적 탐구가 있어야 비로소 동아시아 사형 문제가 지닌 근원이 명확해지고 사형 존폐의 참된 논의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명확한 문제의식 제시, 짜임새 있는 서술, 실증적인 고찰, 생동감 넘치는 묘사, 대담한 비교 분석이 장점이다. 이를 통해 "왜 동아시아의 사형에는 '시체의 처형'과 '생체의 처형' 두 가지가 필요한가?" "사형(죽음)에 대한 사회적 의식은 지역과 사회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 "동아시아의 사형제도는 인도'네팔 그리고 서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누가, 왜 사형에 처해지는가?" "사형장의 민중이 사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사형의 '인도화' '문명화'는 가능한가?" "불교의 불상생(비폭력)의 원리와 사형제도는 양립할 수 있는가?" "사형을 둘러싼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극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사형이라는 궁극의 형벌이라는 문제를 갖고 동아시아 지역 죄와 벌의 법의식에 대해 종합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동아시아라고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의 사형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도와 네팔뿐만 아니라 서양의 사형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그 결과 다양한 시각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풍부한 자료 제시를 함으로써, 비교연구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적인 연구서이지만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자료의 예시와 그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하는 요소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이 전문 연구자들의 논문집임에도 불구하고 궁극의 형벌로서 사형이 갖는 주제의 선정성에 걸맞은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이 책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편저자인 도미야 이타루는 국내 법학자들에게는 중국 법제사나 형벌사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역사를 전공한 일본 교토대 교수다. 역자로 나선 손승회도 영남대 중국사 교수다. '인물과 근대 중국'(2008), '덩잉차오 평전'(1~3권, 2012), '혁명과 내셔널리즘, 1925~1945'(2013) 등을 번역했다. 678쪽, 4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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