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콤달콤 향신료가 바꾼 건 밥상뿐일까…『향신료의 지구사』

향신료의 지구사/프레드 차라 지음/강경이 옮김/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펴냄.

향신료는 동과 서, 남과 북의 여러 문화를 이어주었다. 향신료 덕분에 비롯된 다양한 문화의 만남은 긍정적이고 원만한 결과를 낳기도 했고, 해가 되거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향신료는 주로 아시아에서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를 구하기 어려웠던 유럽인들은 향신료에 대한 수많은 전설을 만들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향신료를 이국적면서도 종교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가령 넛메그(인도네시아 반다제도가 원산지로, 키가 20m까지 자라는 상록교목의 씨앗 속에 든 알맹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절대 뼈가 부러지지 않는다거나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갖가지 미신도 생겨났다.

향신료를 교역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제 세계화의 출발이 되었다. 교역이 늘어나자 지구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의 사람과 사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향신료 교역으로 새로운 요리를 맛본 사람들의 식습관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식습관의 변화는 요리를 준비하고, 먹는 방식까지 바꾸어놓았다.

향신료는 해묵은 오해를 널리 퍼뜨렸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설이나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향신료 교역으로 지도 제작술, 과학, 항해술이 발전했고, 문화 차이에 대한 인식이 자라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경쟁도 발생했다. 이는 '향신료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 결과 일부 국가나 민족은 경제조건이 나아졌고, 일부 국가는 엄청나게 피해를 입기도 했다. 때로는 지배, 착취, 학살, 침략을 낳기도 했다.

'향신료의 지구사'는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향신료의 역사를 폭넓게 다룬다. 총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고대, 중세, 탐험의 시대, 산업혁명기, 20세기 이후를 비롯한 세계화 시대를 아우른다.

향신료로 발생한 교역과 경쟁, 향신료가 빚어낸 문화, 향신료를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 향신료를 이용하는 방법, 향신료를 통해 본 식습관 등을 짚어봄으로써 전 지구적 범위에서 향신료가 어떤 문명사를 썼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 '특집 글'에서는 한국의 향신료 이야기를 실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생강과 초피나무의 열매인 천초, 마늘, 파 등이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약재로 더 자주 쓰이던 후추가 어떻게 음식에 자주 쓰이게 되었는지도 살펴본다.

고추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다른 향신료에 비해 비교적 늦게(임진왜란 전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추는 매운맛이 지독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 한반도에는 이미 달래, 마늘, 파, 생강, 천초 등이 있었다. 고기나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 데는 천초를 썼고, 부자들은 후추를 썼다. 그런데 고추는 어떻게 번성했을까.

천초는 재배가 어려워 채집에 의존해야 했고, 후추는 한반도에서 생산되지 않아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당연히 값이 비쌌다. 이에 반해 고추는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재배가 가능했고, 점차 북쪽으로까지 재배지역이 넓어졌기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재료였다.

18세기에 고추가 천초와 후추를 대신해 매운맛을 내는 으뜸 재료가 되면서 천초장은 고추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매운탕도 탄생했다. 그야말로 고추가 한국의 으뜸 양념재료로 등장했던 것이다. 303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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