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안전 불감증보다 중요한 것

올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는 '안전 불감증'이다. 300명에 가까운 고교생을 희생시킨 세월호 침몰 참사와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인재(人災)에 의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지적하며 단골로 나오는 용어가 안전 불감증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고민해볼 게 있다. 각종 언론을 도배하는 안전 불감증에 우리가 너무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안전 불감증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용어인데도 말이다. 안전 불감증의 일반화로 우리가 진정 놓치는 문제는 없을까.

얼마 전 취재 과정에서 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안전 불감증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안전 불감증으로 모는 것은 자칫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우리나라는 1972년부터 민방위 훈련을 실시해왔다. 최근까지 총 393차례 훈련이 진행됐다. 매년 5차례 정도 훈련이 시행되는데 그 중 2차례가 재난 대비 훈련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처럼 오랫동안 전 국민을 동원해 훈련하는 시스템이 없다. 이렇게 반복적인 훈련을 해왔으니 이론적으로는 우리나라 국민이 재난이나 안전사고에 대해 잘 훈련돼 있다고 해야 되겠다. 하지만 수많은 훈련에도 위기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재난이나 안전에 대한 피로 현상으로 무감각해진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세월호 참사의 일차적인 원인은 승객들을 챙겨야 하는 선장이나 선원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리고 먼저 탈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더해 해경이나 공무원들이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도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2월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도 결국 폭설로 체육관 지붕 위 눈을 치워야 하는데도 이를 내버려둔 리조트 관리 담당자들의 '직무유기'가 가장 큰 문제였다. 어디 이뿐인가.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를 192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로 키운 원인도 기관사가 승객의 안전을 챙기지 않고 먼저 대피했기 때문이다. 전문 직업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해 대형 재난을 키웠다.

우리나라의 '한강의 기적'은 국가 주도의 압축 성장이다. 국가가 모든 영역에 개입해 지도'감독하면서 경제가 급성장했고 이는 언제부턴가 권위의식에 의한 관료주의로 변질했다. 전문 직업인들은 능동적으로 상황을 대처하지 않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고수해왔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놓고 볼 때 선장이 사고가 났는 데도 위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해경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 등은 이런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설 모양이다. 또한 대형사고가 났을 때 관련자 및 관련 공무원을 엄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병폐인 관료주의를 더 키우는 꼴이 될 거라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관료주의를 벗어나 각 분야 전문 직업인들이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회복하게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국민에게 안전 불감증 운운하기 전에 전문 직업인들의 윤리와 책임 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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