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가로등이 밤마다 꺼지는 이유

우리 집 앞에는 가로등이 없어서 해가 저물면 집 주변이 어두운 편이다. 밤에 마당으로 나갈 일이 있거나 골목 밖을 지날 때면 반드시 랜턴을 챙겨야 한다. 오랫동안 밤도 낮처럼 밝은 곳에서 지냈던 내 눈은 시골의 어둠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밤이 캄캄하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여태껏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이 집의 전 주인은 마당 한쪽에 있는 축사에서 소를 키웠다. 거기에는 밝은 등이 네 개나 있어 그중에 두 개만 켜도 마당이 환해진다. 어두워지면 비어 있는 축사의 불을 가로등 삼아 켜놓자고 했더니 남편은 쓸데없는 낭비라면서 내 말을 일축해버렸다. 자연히 저물면 마당으로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이장님께 우리 마을이 조금 어둡다는 이야기를 내비쳤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예산이 부족해서' 일거라는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농촌에는 작물 때문에 가로등 설치가 제한될 수도 있다고 한다.

작물도 사람처럼 밤에 잠을 자야 잘 자라는데 가로등이 환하게 밝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벼가 한창 자라야 하는 여름에는 논 주변에 있는 가로등마저 밤 열한 시면 끈다고 한다. 농사란 작물의 단잠까지 보살펴야 되는 일이었다.

우리 집 마당이 넓고 대문이 따로 없기 때문에 초인종 구실 삼아 개를 키워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동물을 길러본 경험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을 때 잘 아는 사람이 강아지를 데려다 주었다. 황구인 장군이와 흑구인 산이가 우리와 함께 산 지 이제 막 일 년이 지났다. 개를 키워보기 전 내 눈에 비친 애견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기르고 보니 강아지는 가축이기보다는 가족처럼 정을 나누는 소중한 존재였다.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순진무구한 눈빛과 마주할 때면 '언제까지나 내가 너희를 지켜주마' 하는 결의마저 다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장님이 골목에 가로등을 더 설치할 수 없다는 말을 금방 이해했다. 내가 강아지를 기르는 마음과 마을 분들이 작물을 키우는 정성이 같은 것이다.

요 며칠은 모내기를 하느라 마을이 들떠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수런거렸고, 마을 주변의 도랑마다 맑은 물이 흘렀다. 해가 저물고 모내기가 끝나도 논 주인들은 물이 흐르는 도랑 앞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다른 때보다 이른 새벽부터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논 가에 보였고, 가끔은 언성이 높아졌다. 모두 논물 대는 일에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 어린 모들은 차츰 제자리를 잡아가며 쑥쑥 자랄 것이다.

맑은 물이 한껏 들어간 논은 낮 동안엔 먼 산과 가까운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지상의 풍경 대신 밤하늘을 품었다. '별이 빛나는 밤'은 라디오에서만 흐르는 줄 알았는데 숯골의 논물 안에서도 별빛이 흘렀다.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분명 일 년 전과 같을 텐데 그때보다 별빛이 더 밝아 보인다.

밤도 낮처럼 보고 싶었던 내게 시골마을은 어둡고 고요한 밤의 본 모습을 느껴보라고 한다. 까만 도화지를 눈앞에 댄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밤이 두려웠던 내게 잘 보이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들의 낮은 숨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밤이면 여전히 마당과 집 앞 골목이 어둡다. 하지만 이제 그 어둠 속에는 낮 동안에 보지 못한 것들이 모여 있음을 알고 있다. 요즘은 주변의 논에 들어간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장 요란하고, 밤이 좀 더 깊으면 뻐꾸기의 애절한 울음도 들려온다.

물길 따라 흐르는 논물 소리도 기운차고 바람결에 따라온 밤꽃 향기가 덩달아 마당을 서성거린다. 어둠 속에서도 자라는 것들이 있고, 어두워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밤이 이들을 내게로 보내주었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