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정말 큰일 났어요. 빨리 오세요.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일려고 해요."(바로 끊김)
"여기 단순접촉 교통사고가 났는데 포항 무슨 동인지는 모르겠어요. 바로 앞에 OOO음식점이 보이고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는 054-123-4567입니다."
이 두 개의 신고 중 경찰관이 빨리 도착하는 신고는 무엇일까? 바로 두 번째 신고다. 112신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위치이기 때문이다.
112신고 중에서 위치확인 단서가 부족한 신고를 '불완전신고'라 부르는데, 이런 불완전신고의 경우 여러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 신고자의 위치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는 너무나 많은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경찰출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고 장소가 정확히 확인되면 경찰이 5분 안에 즉각 도착할 수 있다.
올해 3월 말쯤 경북 구미에서 한 신고가 접수되었다.
"아저씨, 아저씨. 큰일 났어요. 여기 친구가 떨어지려고 해요. 난간에 매달려 있어요. 우리가 잡고 있어요. 빨리 오세요!"
신고시간은 오후 4시 30분쯤이었고 신고자 목소리는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신고자 휴대폰의 기지국 위치는 주택단지로 확인됐는데 정밀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현장상황을 추측해보았다. 아무래도 초등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친구끼리 모여 장난을 치다가 한 명이 건물 난간에 매달리게 되었고. 주위 친구들이 그 아이를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112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이들의 안전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119구급대에도 함께 출동을 요청했다. 경찰이든 소방관이든 현장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신고자는 경찰이 빨리 와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위치를 물어보아도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신고자는 아이들이다. 신고자 눈높이에 맞는 접수요령이 필요했다. 접수요원은 친근한 어투로 "경찰관이 지금 출동 중이니 반드시 구해주겠다"고 알려주며 최대한 안심시킨 후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절대 전화를 끊지 말라"고 했다. 접수요원은 바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하나씩 질문해나갔다.
"여기 유도관이에요. 주위에 OO초등학교가 있고, OOO마트 2층이에요. (옆에 친구들에게) 경찰관 온대 온대. 조금만 더 잡고 있자."
드디어 위치단서가 나왔다. 신고자 휴대폰 기지국 위치 반경 안에 초등학교와 유도관을 긴급히 검색해서 겹치는 곳을 찾아보니 추정되는 장소가 2곳이 나왔다. 즉시 현장에 출동 중인 여러 경찰차를 두 곳으로 분산시킨 후 각각의 위치를 정확히 지령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난간에 매달린 아이가 떨어질지 모르니 바로 아이들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추가로 지령했다. 접수요원은 계속해서 신고자에게 추가 위치단서를 확인하고, 옆에 어른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게 하였다. 전자지도 상황판을 보니 경찰차가 현장에 거의 도착했다.
'아이들아… 제발 몇 초만… 몇 초만 더 버텨라….'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고 무전이 나왔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112상황실에서는 현장의 무전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드디어 현장상황이 무전으로 보고됐다.
"여기 출동경찰관입니다. 아이들은 무사합니다. 지나가는 행인이 아이를 구조해 둔 상황입니다."
"와아~!" 상황실에서 순간 환호와 함성이 터졌다. 현장 경찰관에게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 인계하고 아이들에게 안전교육이 필요함을 전달하라고 지령했다.
이 신고를 처리한 후부터 나는 아이들이 하는 112신고를 유심히 관찰해봤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현재 자신의 문제상황만을 말하기에 급급할 뿐 정확한 위치를 말하는 것이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세상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니 신고가 부정확한 것은 당연하지만, 혹시 모를 아이들이 처할 위험상황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아이들이 신고에 서툰 원인이 무엇일까 분석해보니 보통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위험에 처하면 119나 112에 신고하라고만 가르치지 정작 신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소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신고 잘하는 법', 즉 '신고 장소를 잘 말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경찰관은 아이들의 신고에 더욱 빨리 도착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전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정확한 장소를 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외로 생각보다 쉽다. 건물 안에 있다면 가능한 한 유선전화기로 112에 신고하면 된다. 유선전화는 바로 위치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물 밖에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간판의 상호를 알려주거나 그 간판에 적힌 '054-123-4567'와 같은 유선전화 번호, 아니면 건물 입구마다 파란 표지판 안에 붙어 있는 신주소(예: 경북대로 123)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글을 보는 독자들은 오늘 밤 우리 아이들에게 '신고 잘하는 법'을 한 번쯤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우리 아이는 위험에 처한 신고자, 아빠는 신고접수 경찰관으로 112 역할놀이를 해보면서 말이다.
이정원 경북경찰청 112종합상황실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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