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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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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1973~ )

빨랫줄의 명태는

배를 활짝 열어둔 채

아직 가시 사이에 박혀있는 허기마저

말려내고 있었네

꾸덕꾸덕해진 눈동자를

바람이 쌀쌀한 혀로 핥고 갈 때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네

꼬리지느러미에서 자라난 고드름

맥박처럼 똑.똑.똑.

굳은 몸을 떠나가고 있었네

마루 위의 누런 고양이

한 나절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네

빨랫줄을 올려다보는 동안

고양이는 촉촉한 눈동자만 남았네

허기를 버린 눈과 허기진 눈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참 비린 한낮이었네

《한국동서문학》 2014년 봄호.

참으로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다. 물론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인해 활자매체가 위축된 탓도 있겠지만 시가 전문화되어 시인들만의 시가 된 탓도 없지 않다. 아무리 심오한 시라도 시를 읽는 재미는 있어야 한다. 길상호 시인은 우리말의 맛을 살려 시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절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는데 먹을거리로 싸가지고 간 멸치 대가리가 법당에 떨어져서 부처님을 보고 있었다. 그때의 민망함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허기를 잊어버리고 빨랫줄에 매달린 명태의 눈과 생선을 좋아하는 허기진 고양이의 눈이 서로 응시하는 순간을 포착한,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시다.

권서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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