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세월호 참사 100일, 충격 못헤어나는 안산

텅빈 거리…주저앉은 상권…끝이 안보이는 슬픈 적막

22일 점심 무렵 단원고 인근 고잔동의 한 주택가는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22일 점심 무렵 단원고 인근 고잔동의 한 주택가는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지난 5월 조문객 인파로 빼곡하던 합동분향소는 80여 일 만에 썰렁해졌다.
지난 5월 조문객 인파로 빼곡하던 합동분향소는 80여 일 만에 썰렁해졌다.
바닥경기가 침체해 영세상인들이 울상이다.
바닥경기가 침체해 영세상인들이 울상이다.
'아직 생사를 모르는 10명이 남아 있다'며 반대하는 유가족 항의에 한 불교단체가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 추모 행사를 취소했다.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월 5일에 이어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째를 맞아 기자가 다시 찾은 경기도 안산시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조문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던 합동분양소 앞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너무도 썰렁했다. 사고 여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길거리는 한산했고, 심각한 경기 악화로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22일 낮 12시 30분쯤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고잔동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귀가하는 학생 몇 명만이 눈에 띌 뿐 어른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 무진빌라의 한 주민은 "옆집의 숨진 아이 부모들은 집회 참석차 오늘도 서울로 갔다. 세월호 참사 문제는 우리 동네에선 아직도 진행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웃으면서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겠느냐. 특별한 일 없으면 집에 있고, 밖에 나갈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나갔다 들어온다"고 말했다.

고잔동 인근에서 만난 택시 기사도 "여기 분들은 아예 외출을 안 하는 것 같더라. 얼마 전까진 조문객 손님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외지 손님조차도 발길을 끊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단원고 정문 옆 길에 희생자를 위해 쌓아 둔 꽃과 간식들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수십 개에 달했던 추모 현수막도 사라지고 없었다. 참사의 아픔을 털어내고 평상으로 돌아오려는 학교 측이 정상 등교가 시작된 5월 말 주변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요기할 요량으로 단원고 정문 앞 유일한 식당을 찾아 자장면을 시켰다. 식당주인은 '장사가 어떠냐'는 물음에 "불경기도 이런 불경기가 없다"며 걱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국이 경기침체에 빠졌다는데,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한 번 와봐야 한다. 여기는 경기가 침체가 아니라 경기 자체가 아예 없다"며 "배달이 10분의 1로 줄어들어 4대였던 배달용 오토바이 가운데 3대를 팔아넘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년 같으면 이 시간에 주린 배를 움켜잡은 학생들이 줄 서서 기다리지만 요즘은 피크타임이라도 식당 식탁의 절반을 채우지 못한다"며 "밀린 임대료 때문에 지난달 가게를 내놓았는데, 보러 오는 사람들도 없다"고 했다.

썰렁한 안산시의 모습은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화랑유원지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안산시민의 산책로로 활용되던 유원지는 평일임을 감안해도 너무 고즈넉해 보였다. 특히 안팎으로 빽빽하게 들어찼던 합동분향소는 제 모습을 잃은 지 오래됐다. 분향소 앞 자원봉사 천막들도 대부분 철수한 상태였고, 일부 남아 있는 봉사자들은 핸드폰을 만지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달랬다. 분향소 앞 한 시민단체 소속 자원봉사자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조문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이젠 하루 열 명도 오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나마 분향소를 지키던 유가족들도 이날 아침 일찍 시민단체와 함께 3개 조로 나뉘어 서울 광화문과 국회, 광주로 이동해 찾아볼 수 없었다. 광화문 농성장과 국회 앞 단식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또 일부 유가족은 증인 심문 차 광주지법으로도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주변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단원고 2학년 김병현 군을 만났다. 외지에서 온 기자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제 주변에서 우리를 자극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우리 부모님들한테 소리 질렀잖아요. 왜 우리 보고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그냥 공부나 하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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