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죽음보다 더한 고통, 통증

얼마 전의 일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어딘가 불편한지 잔뜩 찡그린 얼굴 때문에 할머니의 깊은 주름은 더 깊게 패였다.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지은 죄가 많아 이런 몹쓸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지 모르겠소. 이런 고생 하며 사느니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네." 진료하는 내내 할머니는 척추와 무릎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내가 지은 죄가 많지. 이렇게 살아 뭐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통증'(pai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poena', 즉 '처벌'(punishment)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는 병이나 통증을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신의 형벌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편견이지만 가끔 통증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치료에 소극적인 환자들을 만난다. 통증이 얼마나 힘겨운 아픔이며, 그로 인해 우리 삶의 질이 얼마나 크게 떨어질 수 있는지를 아는 의사 입장에서는 참 마음이 아프다.

평소 아픈 곳이 있어도 잘 참는다는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진료실을 찾아왔다. 바캉스에서 바닷물 속에 버려진 날카로운 병 조각에 찔린 발목의 상처가 낫지 않고 점점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젠 손끝만 스쳐도 죽을 만큼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발목에 상처가 났을 때부터 극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평소 통증에 대해 '가만히 두면 저절로 낫는다' '참아야 빨리 낫는다' '약물은 몸에 나쁘다'는 등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지라 병원을 찾는 것은 엄살이라고 판단했고, 스스로 치료를 포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통증을 방치한 결과, 여학생은 신경에 손상을 입고 심각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통증을 병이 아닌, 하나의 증상으로만 여기고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급성통증인 경우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만 사라지면 두 달 내에 통증이 사라지지만, 만성통증은 통증의 원인이 사라져도 석 달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 또 자극이 없어도 계속되는 통증에 신경이 예민하거나 우울해지는 등 삶의 질도 급격하게 저하된다. 사소한 통증이라도 빨리 치료하면 회복이 빠르고 완치도 쉽지만, 방치해 시기를 놓치면 만성통증으로 진행돼 치료가 어렵다. 사소한 통증은 만성통증으로, 나아가 극심한 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힐링'에 열광하고 있다. 정말 건강한 생활을 원한다면 우리 몸이 느끼는 아픔, 곧 통증에 먼저 민감해져야 한다. '괜찮아지겠지'라는 잘못된 편견으로 통증을 무시한다면, 삶 전체에 대한 힐링마저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 몸이 보내는 적신호, 통증. 무작정 참으면 될 증상이 아닌, 고쳐야 할 질병이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크리닉 과장 이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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