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버스 안에서

기자는 가끔 버스를 탄다. 전날 술자리로 인해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도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땐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안 공간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와 풍경이 있다. 시내버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공간이다. 개개인에게는 일상이라 따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안은 매번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기에 늘 새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1. 그날따라 버스 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사이로 팔순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힘겨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좌석은 20~40대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잠이 들었는지 모른 척하는지 눈을 감고 있었고, 어떤 이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칠순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팔순 할머니를 부축해 자기 자리로 모셔갔다. 팔순 할머니는 연신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옆에 자리가 나자 팔순 할머니는 얼른 칠순 할머니의 손을 잡아당겨 그 자리에 앉혔다.

#2. 다리가 불편한 10대 장애인 소녀와 칠순 할머니가 버스 안에서 나란히 서 있었다. 자리가 나자 소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당기며 앉으라고 권했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을까 말까 뜸을 들이는 순간 50대 여성이 재빨리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소녀가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소녀의 손을 잡으며 "괜찮아, 서 있어도 괜찮아, 너는 괜찮니?"라고 위로했다.

#3. 맨 뒷자리에 앉아 졸고 있던 젊은 남성이 실수로 하차 벨을 눌렀다. 다음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기사는 아무도 내리지 않자 거울로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별말 없이 다시 출발했다.

버스를 타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풍경들이다. 버스를 타면 한층 여유가 있다. 우선 운전을 하지 않아 좋고 창밖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 버스 좌석은 승용차보다 높아 바깥 세상이 훨씬 잘 보인다. 여유가 있으면 보는 것도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들 표정도 살필 수 있고 사람들이 뭘 입고 다니는지 패션 트렌드도 읽을 수 있다. 올해는 반바지가 대세다. 편하고 시원해서 그럴까? 젊은 여성은 아예 하의가 실종된 핫팬츠다. 이처럼 버스를 타면 패션이 보인다.

업종 트렌드도 보인다. 땡처리를 하기 위해 젊은 아가씨를 앞세우고 문을 연 가게가 며칠도 안 돼 셔터를 내렸다. 아웃도어 매장이다. 같은 업종인데도 손님이 많은 음식점이 있다. 기억해 뒀다가 꼭 한 번 가봐야지.

요즘 버스는 쾌적하다. 옛날처럼 이용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요즘처럼 후텁지근한 날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온다. 난폭 운전도 하지 않는다. 싱긋 웃으며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여학생이라도 만나는 날은 괜스레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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