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방시설 의무 없어 불 나면 진화 무방비

2011년 이전 다가구주택, 장비설치 2017년까지 유예

소방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다가구주택이 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소방시설 설치가 유예돼 있다 보니 이를 갖춘 곳이 드물어 불이 났을 때 초기 대응이 늦어져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주택법에 따르면 다가구주택은 소화전과 소화기,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 이에 정부는 2011년 소방법을 개정했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다가구주택은 법 적용 기한이 남아 있어 화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개정된 소방법에 따라 2012년 2월 4일 이후 새로 짓는 다가구주택은 지을 때부터 소화기와 화재감지기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전에 지어진 다가구주택은 2017년 2월 6일까지 소방설비를 마련하면 돼 2년 이상은 자체 진화할 방법이 전무한 상태다.

소방 전문가들은 "다가구주택은 소화기가 없어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해 자칫 큰불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대구의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는 모두 805건으로 이 가운데 다가구주택에서 불이 난 횟수는 120건으로 14.9%에 이른다. 사상자도 전체 92명(사망 15명, 부상 77명) 중 다가구주택에서 13명(사망 1명'부상 12명)이나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물주와 세입자 간 소방시설 설치를 둘러싼 갈등마저 일고 있다.

건물주는 "남의 공간을 빌려 쓰는 세입자가 소화기 등을 알아서 비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세입자는 "화재 예방의 책임은 상품 대여자인 건물주에게 있다"며 맞서고 있다.

올 6월 중순 대구 중구 공평동 한 빌라 건물주 성모(63) 씨는 소화기 설치를 요구하는 세입자 배모(31) 씨에게 "가격도 1만~2만원밖에 하지 않으니 입주민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북구 복현동 한 빌라 세입자 김모(27) 씨는 "돈을 벌고자 세를 놨으면 건물주는 최소한 건물에 소화기 정도는 갖춰야 한다"고 했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갈등은 화재 뒤 배상 여부를 놓고도 계속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다가구주택 세입자가 실수로 불을 냈을 때는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재산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또 세입자는 자신의 집에서 난 불 때문에 이웃이 피해를 보면 이 또한 물어줘야 한다. 하지만 건물주가 전기 배선 관리에 소홀히 하는 등 건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불이 날 경우엔 건물주가 재산 피해를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놓고 건물주와 세입자 간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법이 적용되기 전까지 캠페인을 통해 화재 위험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예방안전과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1가구 1소화기'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자율에 맡겨놓은 상태라 소화기가 없는 집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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