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참여마당] 수필1-지하철 속 풍경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을 '지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지공이 된 지 어언 6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하철만큼 우리 서민에게 더 편리한 교통수단은 없을 것 같다. 목적지까지의 시간 계산이 정확해서 약속 시간 지키기에는 더없는 제일 확실하면서도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풍경 1.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늘 경로석에 앉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날도 지하철 안이 복잡해서 경로석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런데 경로석에 앉은 아저씨가 나를 보고 "저쪽 젊은 애들 앞에 가서 서면 자리를 양보받을 건데" 하면서 자꾸 재촉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 저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힘든 사람들이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지하철도 공짜로 타는 사람들인데" 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세금을 냈는데 왜 그럴 자격이 없냐"고 하시며 소리를 지르시며 화를 버럭 내시는 거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아무 말 않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풍경 2.

나는 1호선 종점인 안심역까지 가서 내리는데 율하역쯤 왔을 무렵 차 안이 텅텅 비어 있는데,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되는 두 사내아이가 출입문 앞에서 장난을 심하게 치고 있었다.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리면 떨어질 것 같고 다칠 것 같아 그 아이들에게 "얘들아, 그 출입문 앞에서 장난치다 다치면 어쩌니?" 하고 얘길했더니 그 아이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내가 한 얘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받는 거다. 하도 어이가 없어 다시 내가 잘못 들었나 하여 "위험하다고 할머니가 그런 거다" 했더니 또 그대로 말 흉내를 낸다. 하도 어이가 없어 나 스스로가 계면쩍기도 하고 황당해 얼굴이 확 달아올라 있을 때 옆자리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고얀 놈들 같으니" 하며 나무라니 그제야 장난을 멈추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럴 리 없겠지만 손자 같고 해서…. 내 직업의식이 또 나왔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의 교육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내 아이만 제일이고 남을 배려 못 하고 그저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저렇게 자란다면 어떤 사회 어떤 나라로 발전될까 슬펐다.

풍경 3.

젊은 아가씨들이 주로 헐레벌떡 민얼굴로 차 안에 올라와 앉기가 바쁘게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자기 집 화장대 앞처럼 화장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처음 그 모습을 볼 땐 참 이해가 안 되었고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저러지 않아도 될 것을 했지만 요즘은 새로 변신해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로 보고 넘기게 되며 그러려니, 바쁘니까 하게 되었다.

풍경 4.

스마트폰은 왜 그렇게들 보는지? 옆 사람이 타는지 누가 오는지 가는지 그저 스마트폰을 보고 이어폰을 끼워 듣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참 웃지 못할 그림들인 것 같다.

풍경 5.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왜 그리도 높은지. 지하철 운행 시 나는 소음과 귀가 잘 안 들려 그런가 보다 하며 이해해 보려 하지만, 특히나 휴대폰 받는 소리는 높은 소프라노다. 옆 사람은 물론 그 칸 안에 있는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신다. 나이가 들면 학력도 미모도 다 평준화된다고들 하지만 공중도덕은 어디쯤 갔는지 어른들도 자기주장대로니….

이런 여러 가지 풍경들이 우리들 삶의 잔상인 것을. 조금만 더 배려하고 다른 이웃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여름철 덥다고들 하지만 지하철 안은 시원한 우리들의 쉼터 같은 곳. 지하철 속 풍경은 우리들 삶의 긴 여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풍경들이 이젠 낯설지 않고 함께 익숙해져 가고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박명숙(대구 동구 동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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