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강압적인 특수 환경에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알기 위한 실험을 계획했다. 모의감옥을 만들고 지원 학생들로 하여금 교도관과 죄수 두 집단으로 나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어떤 형태로 소화해 내는지 보고자 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학생 24명을 선발해 동전 던지기로 교도관과 죄수를 선정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참가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의 역할에 몰입했고,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교도관 역할 학생들은 죄수 역할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점점 위압적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언어폭력으로 정도였지만 점차 상상치도 못한 가혹행위를 하였으며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악랄해져 갔다. 죄수 역할의 학생들도 처음에는 항의도 하고, 집단행동도 했다. 그럴수록 교도관 학생들은 더욱 광폭해져 갔다. 소화기를 발사해 차가운 이산화탄소를 퍼부어 피부가 얼어붙을 정도로 만들고, 발가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얼굴을 포대기로 덮어씌워서 구타하고, 발에는 쇠고랑을 채우는 등 가혹행위는 밤낮이 없었다.
나흘 만에 교도소는 통제 불능의 폭력 상태가 되었고, 5일째는 성적 고문까지 이루어졌다. 죄수 역할의 학생들은 완전히 저항력을 상실했고, 살해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한다. 결국 강한 항의와 비난에 의해 실험이 중단됐다. 짧은 실험이었지만 사람이 환경에 의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참가 학생 모두 엄청난 정신적 후유증을 갖게 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당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이라크 포로 학대는 세계를 경악케했다. 미국 여군이 남자 포로들을 발가벗기고 성적 모독을 가하며 가혹행위를 하는 장면과 그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웃는 기념사진 등은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녀는 시골 출신으로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라크 출병으로 마을회관에 사진이 걸렸을 정도로 주민들의 자랑이었다. 이 사건을 다룬 의회 청문회에서 강연한 짐바르도 교수는 "환경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 군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어난 윤 일병 사망사건에 우리는 모두가 분노하고,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격분하고 있다. 며칠 전 국회의원들이 육군참모총장을 출석시켜서 "무슨 낯으로 거기 앉아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국민의 분노를 대변한다지만 책임을 지우고 벌을 준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일까? 법이 약해서, 처벌이 물러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부대에서 사고가 나면 젊은 소대장부터 사단장까지 진급이나 보직에 불이익을 주는 엄한 잣대가 있다. 이는 오히려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도록 만든다.
재발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군 문화 및 환경을 바꿔야 한다. 일상에도 이런 강압적 가혹행위는 너무나 많다.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왕따 만들기'도 같은 현상이다. 놀림을 당하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정작 가해 학생들은 재미로 한 장난이라고 말한다. 직장 상사의 부하 학대는 의욕적이던 한 인간을 쉽게 무기력하게 만든다. 상사라는 위치가 부하직원들에게 마구 폭언을 해대고 모욕을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묵인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깔려있다. 상거래에서 갑의 을에 대한 횡포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에서도 이런 묵인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총리, 장관을 불러다 놓고 국회의원들은 마음대로 호통을 치고 모욕을 준다. 이것 역시 폭력행위이고 가혹행위이다. 엄청난 가혹 및 고문행위의 일종이다.
세월호의 안타까운 사태가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많이 고치는 계기가 되고 있듯이, 이번 윤 일병 사건도 우리 문화 전반에 걸친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대한 큰 반성과 좋은 병영문화 만들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용진 대구 공동임상연구 윤리위원장'영남대의료원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