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은 봄, 오빠의 지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아기고양이의 이름은 '뜬금이'다. 뜬금이가 된 까닭은 말 그대로 전혀 예상치 못하고 '뜬금없이' 찾아온 반려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인분은 얼마 전 데려오게 된 둘째 고양이에겐 '곰곰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하고 데려온 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두 고양이 모두 우리 집 체셔와 앨리샤와는 달리 한글 이름이라 그런지 귀에도 쏙쏙 잘 들어오고, 뜻까지 알고 난 이후부턴 그 이름의 의미가 상당히 공감 가기 때문인지, 더욱 정감 가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실제로 본 적은 없는 녀석들이지만 꼭 한 번씩 '곰곰이랑 뜬금이는 잘 있지요?' 하며 입 밖으로 이름을 꺼내어 부르며 고양이들의 안부를 물어보곤 한다.
얼핏 생각해보면, 우리 집 두 마리 고양이의 경우엔 뜬금이와 곰곰이의 상황과는 정반대였던 것 같다. 첫째 체셔의 경우엔 몇 달간 인터넷 고양이 카페 글들을 살펴보고, 생활비를 절약해 가며 고양이 용품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등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계획했었다면, 앨리샤의 경우엔 처음 만나고 함께 집에까지 오는 과정이 굉장히 급작스럽고 뜬금없었다.
이렇게 처음 체셔를 만나기 전까지 준비 시간은 꽤 많이 걸렸었지만 생각해 보면, 앨리샤와 만났던 순간 앨리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체셔의 경우에도 인터넷 카페에서 사진을 본 순간 뜬금없이 바로 '쟤구나' 하면서 결정을 내렸었다. 분명 그전에 체셔와 엇비슷하게 닮은 고양이들 사진을 수십 마리도 넘게 봤었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급작스럽게 말이다.
이렇게 체셔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던 나는 바로 그 글을 올린 이에게 연락했었다. 이렇게 급작스러운 결정을 했기 때문일까, 내가 반했던 사진 속 체셔의 용모와 실제로 만난 체셔의 모습은 속으로 살짝 떨떠름할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체셔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다시 봤을 땐 '동물도 사진발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진 속에서는 거의 하얀빛에 가까운 크림색으로 보였던 녀석이 내 눈앞에서는 훨씬 더 짙은 크림색을 띠고 있었고, 한창 성장기였기 때문인지 사진 속보다 제법 많이 자라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스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간절히 기다리던 나의 고양이를 만났다는 설렘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덩치는 좀 컸지만, 아기고양이었던 만큼 지금처럼 두 팔로 들어 올리기만 해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낯선 내 품속에도 꽤 얌전히 잘 안겨 있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엔 종종 함께 밖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물론 입양 글을 올렸던 이가 종종 밖에 데리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고, 그땐 밖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었던 나였기에 몇 차례 데리고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산책하는 일이 익숙해지지 않을까 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는 품 안에 잘 안겨 있구나 싶었던 체셔가 실은 겁을 먹고 내 몸에 의지한 채 떨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내가 참 무지했었구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부터 반려묘와 함께 사는 반려인들 사이에선 종종 고양이와의 인연을 뜻하는 '묘연'이라는 말이 쓰이곤 한다. 나와 체셔, 그리고 주변의 만남들을 떠올려보면, '묘연' 역시 다른 '인연'들이 그러하듯 정말 곰곰이 생각하고 판단한 것 같아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순식간에 나타나 맺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마치 어느 순간 다가와서 나를 톡톡 건드리는 체셔의 발바닥처럼, 뜬금없이 나타나지만 닿으면 말랑말랑하고도 달콤한 것이 바로 고양이와의 사이에서 맺어지는 '묘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와 체셔, 앨리샤 사이에서만큼은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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