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만나다
인근 '반탑'(Bantap)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할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바람에 흔들린다. 이 마을에서 대를 이어서 수틀을 짜는 집이다. 마당에는 여러 대의 베틀이 놓여 있고, 그중 3대에 할머니들이 앉아 침침한 눈으로 한 올 한 올 실을 고르면서 연신 좌우로 손을 움직인다. 평생 그 일을 해온 듯한 굵은 손마디 위로 힘줄들이 선명하다. 한참을 구경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주인인 듯한 할머니가 홀로 앉아 있다. 손으로 삐걱거리며 돌려 목화의 씨를 빼내는 기구, 거기에서 나오는 실을 감는 물레, 양철 같은 것으로 란나시대 머리핀을 만드는 기구 등이 있다. 여기저기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주저하다가 물어보니 돌아가셨다고 한다. 딸이 가업을 잇고 있다는데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아득해 보인다. 할머니만 홀로 어쩌다 찾아오는 방문객과 한담을 나누는 것이 소일거리인 듯하다. 만들어 파는 옷들도 있는데,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다. 방문에 굵게 양각된 문양들이 그것을 만든 장인의 공력과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어 눈길이 간다. 거미줄이 내려앉은 커다란 석유등 3개, 50년 전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니 그전에 썼던 것인 모양이다. 안에서는 아직 기름이 찰랑거린다.
◆'로이 끄라통' 준비에 바쁜 왓(절)들
'왓 창켕'(Wat Chang Kerng)이라는 팻말이 순례자의 발길을 끈다. 조그만 사원 안에 배불뚝이 붓다가 모셔져 있고, 그 옆에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파낸 듯한 불두가 눈길을 끈다. 뜨락에는 로이(띄우다) 끄라통(꽃배) 행사를 하기 위한 무대가 만들어져 있고 아이들이 연습 중이다. 뒷문 밖에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굵은 가지 위로 소망을 써놓은 하얀 작대기가 여러 개 서 있다. 그 앞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깔리양족들, 절 안에서는 먹으면 안 되지만 여기서는 괜찮다고 커다란 웃음소리까지 깔깔거리며, 나에게도 얼음을 채워 캔맥주 한 개를 선뜻 준다. 무삥(돼지고기 꼬치)과 함께 마시며 한참 동안 알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크리스천이던 오지 산속과는 달리 절이 많은 도심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까부터 건너편 화장실 앞에 노바스(동자승)들이 터뜨리는 폭죽 소리가 요란하다. 이 나라는 축하할 일이 있으면 예외 없이 요란하게 폭죽을 터뜨린다. 구슬처럼 동그란 플라스틱에 쌓여 있는 것에 불을 붙여 새총에 담아 쏘면 허공에서 큰 소리를 내며 터진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나도 한 번 쏘아 본다. 아직 아이들이니 얼마나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까, 자기들끼리 쉬지 않고 말을 한다. 무에타이를 했다는 12세 소년은 열예닐곱 살로 보일 정도로 크고 어른스럽기까지 하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는 황금빛 용이 다른 용을 잡아먹는 시멘트 조각이 있다. 어두컴컴한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니 폭약을 터뜨리던 노바스들이 따라 들어와 불을 켜주고, 벽에는 오늘 같은 축제 때 마을 사람들이 절에 와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까 장난하며 놀던 동자승 중 하나가 방에 다녀오더니 붓다 두 개를 선물로 준다. 천진스럽게 웃는 아이의 웃음, 그 동심까지 잔잔하게 물결이 일듯 들어온다.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떠날 줄 모르고 살갑게 내 팔뚝까지 잡는 동자승들을 떨치고 나오기가 못내 아쉬웠다. 마당 가 요사채 2층에는 황금색 가사를 입은 동자승들이 난간에 감나무처럼 걸려 있다. 같이 하룻밤이라도 지새우며 이국의 사진들을 보고 잘 통하지 않는 말일지라도 서로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근처에 있는 '왓 부파람'(Wat Boopparam)의 처마를 따라 산등성이에 곱게 노을이 진다. 입구에는 불을 집어넣은 종이별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예쁘게 흔들리고 대웅전과 뒤뜰에 탑도 화려하다. 그 옆에는 동자들이 윗옷을 벗고 등나무 줄기 같은 것으로 만든 듯한 다꼬(발배구)공으로 축구를 하다 이국인이 다가가자 중단해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 옆에 윗옷을 벗은 스님과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남정네 셋이 웃는다.
◆2,565m, 도이 인타논을 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매쳄' 마을을 지나 북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도이 인타논'(해발 2,565m)을 넘는다. 매표소를 지나 한참을 내려가니 차 위에 수많은 꽃과 등으로 치장한 화려한 로이 끄라통 가장행렬이 지나간다. 인근에 있는 마을마다 1년 중 가장 아름답게 꾸민 차 위로 화장을 짙게 한 소녀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그 행렬을 따라다니며 오토바이에 수레를 달아 오징어를 구워 파는 사내, 큰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의 마음이 들떠 있으니 모처럼 장사가 잘되는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퉁시아오'라는 조그만 소읍을 지난다. 태극기와 태권도 도복을 입은 소년이 대련 자세를 취하고 있는 간판이다. 그 앞에서 하얀 도복을 입고 화분에 물을 주는 사내에게 물어보니 사범은 태국인이며 한국에 가서 배웠다고 한다.
윤재훈(오지여행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