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풍류산하] 불이문과의 선문답

휴전선 부근에 있는 금강산 건봉사를 찾아간다. 흔히들 금강산 건봉사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금강산 자락인 건봉산(911m)에 몸을 기대고 있는 사찰이다. 민통선 안이어서 개방 초기에는 두어 곳의 군부대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따랐지만 요즘은 편하게 내왕할 수 있다.

금강산과 백두산을 가보고 싶었던 것은 젊은 시절 꿈이었다. 지리부도를 펼쳐보니 백두산은 높고 금강산은 만물상의 기암괴석들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불가능에 가까운 막연한 꿈이지만 금강산 구경을 구체적인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것은 고교 시절 정비석의 산문 '산정무한'을 읽은 후부터였다. 내친김에 금강산에 덧붙여 개마고원을 거쳐 사스래나무 숲을 지나 백두산을 등정하는 꿈 하나를 더 보태고 보니 배꼽이 더 큰 꼴이 됐다.

꿈은 열심히 꾸면 반드시 이뤄진다. 대학에 진학하여 산악부에 들어간 것이 백두산 등정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백두산 서파 코스를 종주할 수 있었다. 이 코스는 북한과 중국의 접경인 5호 경계비에서 장백폭포까지 천지를 끼고 12시간을 걸어야 하는 야생화 코스다. 온종일 걷다 보면 코에서 단내가 나는 지루한 코스지만 민족 영산의 기운을 직접 내 숨결로 느낀다는 자긍심 하나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동안 금강산은 세 번 다녀왔다. 외금강 코스는 두 차례에 걸쳐 봄꽃과 가을단풍을 원 없이 보았다. 내금강은 초가을에 들어가 꿈에 그리던 장안사 터와 표훈사 보덕암 그리고 묘길상 등을 샅샅이 둘러봤다. 그러니까 금강산의 4대 사찰인 신계사,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 중 유점사 하나만 빼고 모두 눈도장을 찍었으니 가슴에 품었던 소원은 거의 이룬 셈이다.

건봉사는 금강산의 본령에 속한 절은 아니다. 먼발치 금강산 자락에서 겨우 이름만 걸치고 있지만 양반 가문의 항렬은 딴 셈이어서 쉽게 기죽지 않는다. 건봉사는 한국전쟁 전까지는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 그리고 북한의 유점사까지 말사로 거느린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였다. 승려의 수도 100명이 넘었으며 모두 642칸의 건물과 124칸의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절집의 규모도 거대하지만 창건 역사는 더욱 찬란하다. 신라 법흥왕 7년 아도화상이 원각사를 창건한 것을 건봉사의 효시로 꼽는다. 전설에 가까운 옛날 역사는 하나같이 부풀려진 것이 많아 믿을 게 못 된다. 아도는 신라 불교가 공인되기 154년 전의 사람이며 법흥왕 7년은 신라 불교가 안착하기 8년 전이어서 고승의 이름을 빌린 창건 설화는 그냥 웃어넘기면 된다. 그렇지만 신라 말 도선국사가 중건한 후 서봉사로 이름을 바꿨고 그 후 나옹선사가 중건하고 건봉사로 명명했다.

이렇듯 고승대덕이 나타나 사찰 이름 바꾸기를 거듭하면서 건봉사는 대찰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지은 죄업을 부처님의 음덕으로 씻으려는 세조가 행차하여 원당으로 삼고 전답을 하사하자 달리는 말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왕실의 입김은 이렇게 세고 무섭다.

건봉사는 그동안 두 번에 걸친 불의 피해를 입었다. 1878년엔 큰 산불이 일어나 건물 3천183칸이 몽땅 내려앉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하여 겨우 옛 모습을 찾기는 했으나 한국전쟁 때 양쪽 진영의 폭격으로 또다시 완전 폐허가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우리네 속담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불이문(不二門)이라 부르는 절 입구의 일주문이다. 통상 절의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으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일주문은 아주 특이하게도 네 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을 얹어두고 있다. 그래서 불이문은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건봉사로 가는 날은 때마침 실비가 뿌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도로를 채색하는 날이었다. 이날따라 군의 작전차량조차 뜸한 날이어서 내가 탄 차는 아무도 밟아 본 적이 없는 노랑 순결의 포도 위를 달리다 보니 약간은 미안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도 했다.

건봉사 경내는 아직 옛 영화를 재현하는 불사가 이뤄지지 않아 빈터가 많다. 가람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남 먼저 내려와 불이문 옆에 서서 주섬주섬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포화 속에 어떻게 혼자 살아남았니." "풀숲에 그냥 엎드려 있었어." "그런 재주는 어디서 배웠니." "네 개의 다리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줄까." 불이문과의 선문답이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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