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숙직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니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집에서 전화가 왔으니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
간밤에 꾼 꿈에 '항아 나는 간데이' '잘 있거레이'라고 했던 할머니의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할머니가 별세했다는 음성 너머로 여동생의 흐느낌 소리가 들리고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아버렸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택시를 불러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남동생은 최전방에서 군 생활 중이고 나 또한 파출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 보니 할머니의 임종을 어머니와 여동생이 지킨 것이다.
울부짖으며, 평안히 눈감고 있는 할머니의 볼을 부비고 또 부볐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휑한 찬바람이 맴도는 고향집에서 난, 그렇게 황망하게 상주가 되었다.
살아 생전 할머니는 손주들을 엇들고 받들며 내리 사랑을 베푸시던 분이었다. 비가 내리던 날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우산 들고 기다리다 나를 등에 업은 채 십오리 비포장 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집까지 오면서도 힘든 기색 한 번 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여장부였다.
할머니 세상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나 아이 셋을 둔 지금 새삼 할머니가 보고 싶은 날이다. 꿈속에서라도 한 번 뵈었으면.
이근항(경산시 백천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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