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참여마당] 수필-미꾸라지

햇살이 눈부신 여유로운 오전.

할머니 두 분이 반쯤 위로 열려 젖혀진 창문 앞에서 오늘도 엉덩이를 쑥 빼고 고개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재활 치료를 필요치 않는 노인성 병명을 지닌 두 분 할머니의 익숙한 모습이다. 단조롭고 무료한 병원 생활 중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병원 밖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할머니들의 낙이기도 하리라.

오늘은 또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 걸까….

"할머니, 오늘은 또 뭘 그리 열심히 보고 계세요?" 한마디 거들며 그네들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다.

"저거 봐라, 미꾸라지다. 그런데 그 옆에 건 뭐고?"

전통시장이 인근인 병원 앞에 새로운 길거리 상인이 등장했다.

리어카 위의 커다란 대야엔 까만 미꾸라지들이 파닥파닥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미꾸라지와 함께 팔고 있는 누런 뭉치들, 그게 도무지 뭔지 7층에서 확인하기엔 거리상 역부족이었다. 행인들은 간간이 리어카에 멈춰 서서 미꾸라지보다는 노란 물건을 사가는 듯했다. 추어탕을 즐겨 끓이는 난 오늘 퇴근할 때까지 저 미꾸라지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내심 조바심을 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가을에 더욱 맛이 나는 추어탕은 우수한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하여 초가을에 먹으면 더위로 잃은 기력 회복에 좋은 보양식이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시장을 오가며 좋은 미꾸라지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고로, 오늘 처음 등장한 저것은 분명 어느 시골 도랑에서 건져 올린 토종 미꾸라지임에 틀림 없노라 지레 확신하기에 이른다.

퇴근길, 다 팔렸을까 걱정했던 미꾸라지는 남아 있었고, 의문을 자아내던 노란 뭉치는 꼬지용 이쑤시개임을 알 수 있었다. 오전 7층에서 녀석들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드문드문 허연 배를 드러내며 누워있는 녀석도 있었고, 움직임이 적은 것도 있다. 전체적으로 도통 생기가 없는 듯하여 망설이다 1㎏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쯤 되면 녀석들이 새로운 움직임에 놀라 비닐봉지 속에서 요동을 칠만도 한데 한치의 미동이 없다. 잘못 산 건 아닐까. 찜찜한 기분.

어쨌거나 집에 오자마자 미꾸라지 봉지를 조심스레 풀고는 굵은 소금 한 웅큼을 털어 넣었다. 그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녀석들이 소금 세례에 맞춰 후다닥 일어나며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추어탕을 끓이는 과정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다. 끔찍하지만 용기 내어 소금 한 줌을 잽싸게 더 털어 넣고 봉지를 봉하니 녀석들의 사투는 더욱 격렬해지고, 한참 후 사투가 잦아들 즈음 이게 무슨 소리??

낮게 웅…웅…하는 듯한 소리는 분명 녀석들의 봉지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 미꾸라지도 최후의 순간엔 이런 단말마적인 신음소리를 내뱉는구나. 참 놀랍고도 암담한 기분.

추어탕을 끓이면서도 지금껏 추어탕을 끓여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죄책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복을 지으려고 추어탕 감으로 희생될 미꾸라지를 사서 방생까지 하는 사람도 많은데, 난 이렇게 여린 생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며 사리사욕을 채우려고만 하고 있다니.

앞으로 추어탕을 끓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고민된다.

채민경(대구 달서구 월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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