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대구 출신 현진건, 빈민을 소설화하다

소설가 현진건
소설가 현진건

한 때 식민지 시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붐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모던한 경성(서울) 거리를 인력거가 달리는 풍경은 그 영화들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1920년대 조선에서 인력거는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도로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좁은 도로가 많았던 탓에 전차는 이용자 수는 많았지만 그 통행범위가 한정되었다. 아울러 도심을 제외하고는 진창의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어서 자동차 역시 아이들이 가솔린 냄새를 맡으며 따라다닐 정도로 움직임이 느린데다가 사용료가 너무 비싸서 일부 부유층의 특별 교통수단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볼 때 인력거는 1920년대 조선, 특히 경성의 대중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다. 오후 무렵 화려하게 차린 기생들이 명월관으로 출근할 때도, 저녁 무렵 고위인사들이 회식을 위해 명월관에 놀러 갈 때도, 양갓집 여자들이 외출할 때도 인력거를 이용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기생들은 자신들의 상품성을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휘장을 걷고 가능한 한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오히려 휘장을 내리고 자신을 숨겼다는 것이다.

대중의 애용과 달리, 1920년대 조선에서 인력거꾼은 최빈민층에 속했다. 인력거 운영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은 인력거꾼들이 아니라 영업주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1922년 일제가 물가안정을 위해서 인력거 이용료를 25퍼센트나 삭감하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인력거꾼들이 동맹파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은 조선 최빈민층이었던 인력거꾼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운수 좋은 날'은 도시 하층부를 이루는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이다. 김첨지로 대표되는 그들의 삶은 너무나 남루하고 구차하다. 아내는 오랜만에 생긴 좁쌀 한 되를 배고픔 때문에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들이켜서 배탈이 나고, 남편은 한 달째 앓아누운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줄 여유가 없다. 열흘 동안 돈 구경을 한 적이 없는 한 인력거꾼의 기차게 운수 좋은 하루를 담은 이 소설이 향후 오랜 기간 관심을 받아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운수 좋은 날'이 발표된 1924년 무렵은 홍길동 같은 비범한 능력의 영웅들은 사라졌지만 소수 특권층에 해당하는 신청년들이 여전히 소설의 주인공들로 벅적대고 있던 때였다. 이 시기에 현진건은 '빈민'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세계는 너무나 천하고 속되어서 문학이라는 고귀한 영역에 들여놓기가 곤란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던 세계였다.

그런데 대구 우체국장을 지낸 아버지, 러시아대사관 통역관과 변호사를 지낸 두 형이 있는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현진건이 근대문학사상 거의 처음으로 빈민의 삶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빈민의 삶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이는 현진건 삶 전반, 문학적 능력 전반과 관계된 사항이어서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현진건 덕분에 식민지 현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비로소 소설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