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단순사건? 중대사건!

"우리는 타민족을 노예로 삼는 일에 고용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노예상태에 있다…다른 민족의 해방을 폭력으로 침탈할 목적으로 군대를 양성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관용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제정 러시아가 핀란드의 자치권을 유린하고 있던 1901년 레닌이 한 말이다.

문제는 이런 신념이 철저히 '당파적' '편파적'이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민족 자결은 그 자체로 타당하고 올바른 것이 아니라 혁명과 당의 이해에 부합할 때만 올바른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당의 이해와 민족자결이 충돌할 경우 민족자결은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억압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자연스럽다. 레닌의 볼셰비키와 대립하던 멘셰비키가 대의민주주의에 입각해 자치정부를 세운 그루지아를 1921년 붉은 군대가 무력 침공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다. 그에게 인간 사회의 모든 사건, 이념, 제도의 가치와 의미는 혁명의 단순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존재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 레닌의 신념이었다.

민주주의 역시 이런 도구적 사고의 지배 대상이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특정한 환경에서 당에 복무하는 무기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장래 정책을 기본적인 민주적 원리에 종속시키고 이 원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민주적 원리를 오직 우리 당의 이해 문제에 종속시킬 것인가? 잘라서 말하면 나는 후자를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기 전까지 항상 요구했던 민주적 자유가 혁명 후 '부르주아의 무기'로 매도당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같은 당 김현 의원이 연루된 '대리기사 폭행 사건'을 "단순사건으로 해결하자"고 했다. 우리 편에 불리하면 국회의원이 연루된 집단 폭행도 '단순사건'으로 덮으려는 그 태도에서 좌파의 고질병인 도구적 사고의 악취가 풍겨난다. 만약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새누리당 의원이 관련되었어도 '단순사건' 운운했을까. 그간의 경험은 그럴 것이란 추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마 '중대사건'이라며 게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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