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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수출 감소 '블랙홀'…대구 경제까지 삼킬라

구미가 몹시 어렵다. 전자산업의 업황이 나빠지면서 구미 국가산업단지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2천24곳에 이르는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 DB
구미가 몹시 어렵다. 전자산업의 업황이 나빠지면서 구미 국가산업단지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2천24곳에 이르는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 DB

수출도시 구미의 경기 하락세가 눈에 띌 정도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가동률은 뚝 떨어졌고, 수출 실적도 지난해에 비해 10%나 감소했다. 중소기업들은 주문 물량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소상인들은 영업 부진으로 죽을 맛이다.

구미를 이끌어가던 삼성'LG 등 이른바 리딩 기업들이 휘청거리면서 이런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닥쳐온 엔저 현상은 리딩 기업들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기업들의 향후 경기전망도 최악의 수준이다. 앞으로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대구까지 포함하는 경북 중남부권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구미 살리기'가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구미산단의 입주 기업체 수는 올 상반기 말을 기준으로 2천24개사에 이른다. 40만 명 이상이 사는 구미는 물론, 대구 등 경북 중남부권 살림살이 상황을 거머쥐고 있는 곳이 구미다. 이런 구미가 지금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다.

20년 가까이 공장을 돌려왔다는 한 전자부품업체 대표는 "없어도 없어도 주문 물량이 이렇게 없기는 정말 처음이다. 나도 그렇지만 본업 물량이 없으니 자동차 부품 단순 조립을 하고 있다. 정말 비참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일감이 없어 단순 조립일로 '연명'하는 기업이 최소 200~300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체 대표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한 관계자는 "삼성'LG 등 대기업 단순 하청구조인 구미공단이 대기업의 생산 비중 감소로 심각한 하락세의 길을 가고 있다"며 "미래가 더욱 불투명한 만큼 정부와 구미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 본부에 따르면 구미국가산업단지의 가동률은 2010년 88.9%까지 올라간 이후, 하향세를 긋기 시작했다. 가동률은 2011년 84.2%, 2012년 81.2%로 내려가더니 지난해 연말엔 60.4%로 급락했다.

올 상반기 다소 회복했지만 상반기 말 현재 80%를 회복하지 못한 채 77.2%에 머물고 있다.

구미 지역의 수출 실적 및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구미세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구미 지역 수출 실적은 214억6천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37억3천만달러에 비해 10%나 감소했다. 무역수지 흑자액도 129억4천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1억7천만달러에 비해 20%나 줄었다.

이는 구미 지역 전체 수출의 66%를 차지하는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이 7%, LCD 등 광학 제품은 16% 각각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구미세관은 분석했다.

◆왜 이런 일이?

구미 지역의 경기 하락세는 전반적인 경기 부진에다 구미산단 내 삼성, LG 등 대기업 계열사들의 생산 물량 및 투자가 해외, 수도권 등으로 계속 빠지면서 생산 비중이 크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 일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9년 베트남에 휴대전화 생산공장을 가동하면서 구미사업장의 저가 휴대전화 생산물량 상당 부분을 베트남으로 옮겨갔다. 이 때문에 구미 지역에선 주문 물량 감소로 휴대전화 관련 협력 일을 하는 중소업체들이 현저히 감소했다.

LG전자도 베트남, 평택 등 수도권으로 투자를 집중하면서 구미사업장의 임직원 수가 크게 감소했고, 협력업체들의 주문 물량도 대폭 줄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구미상공회의소에서 LG 협력업체 대표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베트남 투자유치 설명회까지 열리기도 했다.

삼성코닝정밀소재는 1995년 구미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003년 아산사업장 준공 이후 생산 비중, 투자 등이 아산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결국 최근엔 구미사업장의 임직원 수가 대폭 준 데 이어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로 사명까지 바뀌었다.

LG디스플레이도 6세대까지 패널 생산라인을 구미사업장에 뒀으나 2006년 7세대 설비 공장을 파주에 두기로 선택하면서 파주사업장의 비중이 구미사업장보다 훨씬 커졌다.

구미산단 내 대기업들의 구미 이탈로 구미시는 2000년 이후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줄곧 수출 1위를 달려왔으나 2010년부터 4년째 충남 아산시에 수출 선두를 뺏기고 있다.

지역의 경제전문가들은 "삼성, LG 등 구미공단 리딩기업들의 생산 비중 감소로 중소 협력업체에 미치는 역할 등이 예전 같지 않고, 더 나아질 전망도 불투명해 정부나 지자체는 심각한 고민과 함께 빠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어둡다

4/4분기 경기전망도 최악의 수준이다.

구미상공회의소가 최근 구미 지역 81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4/4분기 기업경기전망을 조사한 결과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가 74를 기록, 기준치(100)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 같은 전망치는 전분기 전망치(98)보다 24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세부항목별 지수를 보면 대외여건 악화 78, 대내여건 악화 79, 매출액 감소 80, 수출 감소 81, 내수 감소 78, 영업이익 감소 73, 생산량 감소 75, 설비투자 감소 83, 자금 사정 악화 78 등으로 나타나 전체 대부분에서 악화 전망이 우세했다.

제조업의 쇠락은 서비스업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택시 기사들은 "대기업 공장이 있는 구미 2'3 국가산업단지 일대는 손님들이 별로 없어 오래전부터 썰렁한 거리가 됐다"고 한숨을 쉬고 있다.

식당 주인들도 "기업체 임직원들의 단체 회식은 물론 일반 손님들도 예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용창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구미의 기업경기가 매우 어렵고,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시민 모두가 함께 걱정해야 한다. 미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누리당 심학봉 국회의원(구미 갑)은 "구미산단의 노후화 및 대기업의 투자 축소, 산업구조 전환 지연 등으로 구미산단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면서 "구조고도화사업 등 구미산단의 재창조 작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지역의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미 이창희 기자 lch88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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