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우환 관련 미술관 건립과 대구뮤지컬축제(DIMF)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취임 사흘 만에 공식적으로 처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원점 재검토'라는 말은 대개 사업 포기를 뜻하는 쪽에 가깝다. 난데없는 시장의 말에 사업을 추진하던 공무원이나 DIMF 관계자는 당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점 재검토는 사업 포기가 아니라 진행 방향이 잘 가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문화계 등 여러 분야의 의견을 다시 묻겠다는 뜻"으로 정정됐다. 석 달이 지난 지금, 진행 방향 검토는 잘했는지, 누구의 의견을 물어봤는지는 모르지만, 이 두 사업은 권 시장이 말하기 전과 다름 없이 진행 중이다.
권 시장이 누구로부터 대구 문화예술계 이야기를 듣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취임 사흘 만에 구체적인 사업 이야기를 한 것은 상당히 의외이고, 한편으로 걱정이다. 한 측근은 대구 문화예술계가 많이 시끄러워 시장의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김범일 전 시장도 여러 번 거론했고, 드러난 현상만 보면 맞다. 그러나 옳지는 않다. 정작 시장이 걱정할 곳은 다른 쪽이다.
권 시장이 시끄럽다고 한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오랫동안 '애정'으로 대구 문화예술계를 지켜보고서 나온 말일 때다. 그러나 주로 서울에서 활동한 권 시장의 전력에 미뤄 이 가능성은 작다. 다른 경우는 대구시장 출마와 당선을 전후해 단편적으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판단했을 때다. 이는 굉장히 위험하다. 경험상, 대개 이해 당사자로부터 과장되거나 왜곡된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커서다.
그동안 대구시장이나 시의 고위 간부로부터 '시끄러운 대구 문화예술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루하게 해명해 왔다. 대구만 유별난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에 시끄럽지 않은 곳이 없고, 다른 이의 작업은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독특한 아집 문제라는 식의 해명이었다. 덧붙인 것이 있다면 몫을 키워달라는 요구였다. 한정된 몫에 경쟁자가 많아 생기는 현상이니 자리를 늘리면 시끄러움은 자연히 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부끄럽게도 대구 문화예술계가 시끄러운 것은 예술성이나 능력의 시비가 아니라 공모직에 대한 자리다툼 때문이다. 그동안 대구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이 공모직에 선임될 때마다 시끄러웠다. 상대적으로 서울을 비롯한 외부 인사가 선임되면 조용했다. 지역 인사의 단점은 잘 알지만, 외부 인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니 침묵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나 결과는 지역 인사가 더 유능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전적으로 대구 문화예술계의 잘못된 풍토로 보이는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대구시의 잘못도 컸다. 듣는 귀가 너무 많고, 귀까지 얇은 대구시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모 모든 과정은 물론, 가장 중요한 임기까지도 원칙 없이 불투명하다. 이른바 전형적인 '갑'이다. 전임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은 공모 2년에 연장 1년, 대구시립오페라단 감독은 공모 2년, 연장 2년에 이어 1년 연장을 두 번씩 했다. 연장 방법도 대구시 멋대로다. 아무런 객관적 평가 없이 공모든, 연장이든 시가 결정하면 끝이다.
이러한 무원칙은 아직 진행형이다. 직전의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전임자 잔여 임기 공모 1년, 공모 2년, 공모 1년)과 현재의 대구문화예술회관장(공모 2년, 공모 없이 1년씩 2년 연장), 대구시민회관장(초임), 오페라재단 예술본부장(초임) 등도 모두 임기가 1년이다. 누구는 가만히 앉아 1년씩 연장하고 또 다른 이는 공모를 거쳐도 1년 임기다. 더구나 연장의 이유도 '잘했음'이 아니라 '지난 임기 동안 별문제가 없었음'이다. 좀 과장하면 '시의 입맛에 잘 맞음'인 셈이다. 이런 식이면 전문가를 모실 필요가 없다. 공무원을 앉히면 차라리 문화예술계는 조용할 것이다.
권 시장이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시끄러운 문화예술계가 아니라 그 뒤에 앉아 시끄럽게 만드는 대구시를 먼저 단속하라는 뜻이다. 공모직은 불명확한 소문이 아닌 실제적인 업무 수행 능력을 따져 평가해야 한다. 믿고 맡긴 뒤 철저한 평가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데 믿지도 맡기지도 않으면서 임기라는 목줄을 쥐고 전문가를 눈치꾼으로 내몰고 있다. 바깥의 생채기는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곪은 곳은 수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메스를 들 이는 시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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