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클래식 풀어주는 성악가' 테너 하석배

클래식이 어렵다고요? 그건 익숙하지 않기 때문,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이죠

하석배 교수는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최정상급 성악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는
하석배 교수는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최정상급 성악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는 "학장실에 지구본을 두고 계속 학생들한테 보라고 하는 것도 세계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가을을 기다렸다. 그의 목소리를 가을에 들으면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았다. 가을의 문턱에서 만난 사람은 테너인 하석배(45) 계명대 교수. 그는 지난해 여행책인 '나는 오늘도 유럽에서 클래식을 듣는다'를 펴냈다. 별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 많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푸치니의 '토스카'를 추천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고독한 음악가인 슈베르트를 소개하며 장소와 음악을 엮었다.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이 음악가는 요즘 클래식 음악을 쉽게 푸는 일을 하고 있다. "클래식이 어렵다고 오해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하 교수의 음악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클래식을 푸는 남자

그는 베르디와 비욧띠, 비냐스 등 권위 있는 국제 성악 콩쿠르 3곳에서 입상하며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최정상급 성악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클래식을 푸는 방법은 단순함과 재미다. MBC 라디오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클래식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그에게 시범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오솔레미오(O Sole Mio) 는 나폴리 사투리예요. 사투리로 만들어도 이렇게 유명한 노래가 될 수 있으니 여러분, 사투리 쓰는 거 속상해하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다. 하하."

그는 클래식을 '어렵고 쉽다'는 잣대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익숙함이다. "클래식은 고전이라는 뜻입니다. 익숙해지면 아주 편하고, 덜 익숙하면 불편한 거죠. 제가 할 일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익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클래식에 가까이 다가와야 후배 음악가들이 설 무대도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여름 하 교수는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튜즈데이 모닝콘서트'를 진행했다. 피아니스트 김민경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 나폴리, 밀라노에서 탄생한 클래식 음악을 해설하는 콘서트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쉽게' 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대구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제오페라축제를 해서 성공한 도시로 관객들의 음악 취향도 까다롭고, 수준이 높은 편이다. 하 교수는 "대구 관객들은 듣는 귀가 열려 있다. 대구경북 주요 대학에 음대가 네 군데나 되는데 이 음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음악가가 되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이 사람들의 귀는 세계 최고"라며 "쉬운 음악부터 다소 복잡한 음악까지 일반 대중과 전문가를 동시에 만족하게 하려고 고전과 현대, 300년을 넘나드는 음악으로 프로그램을 짜 관객들과 소통했다"고 말했다.

◆유럽이 주요 무대, 그곳에서 배운 것

그가 클래식 대중화를 논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전문가 무대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 정상에 오른 뒤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이 있었다. '절대 지각하지 말자.'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인 지아친토 프란델리를 스승으로 모셨다. 하 교수를 제자로 받아들일 때 스승의 나이가 여든이었다. "연로하셔서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하셨지만 무작정 전화해서 찾아갔어요. 이탈리아어가 서툴러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녹음하고, 적고, 밤에 아파트 수위 아저씨한테 통역해달라고 했죠. 제 열정을 알아보셨는지 '한국에서 잘 배워왔구나. 한 번 공부해 보자'고 하셔서 11년간 레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버스가 파업한 날도 있었지만 11년간 하 교수는 단 한 번도 레슨 시간에 늦은 적이 없다. 스승이 가르친 것은 노래만이 아니었다. '무대에서는 감성적으로 살되, 무대에서 내려오면 이성적인 인간이 돼라.'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는 음악가가 돼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하 교수가 찾은 나라는 31개국, 도시로 따지면 200곳이 넘는다. 전 세계를 누비다 보니 재밌는 일도 많이 생긴다. 그는 핀란드 공연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는 사람들 평균 체격이 커서 화장실 남자 소변기 높이도 높아요. 소변볼 때 어린이용 발판을 가져가야 할 정돕니다. 오페라용 소품도 거대했어요. 소품 담당자가 제 키를 보더니 '칼이 길다'며 칼 길이를 잘라주더라고요. 소프라노도 저보다 키가 크니까 계속 의자에 앉혀놨어요. 이런 열세를 극복하려면 제가 더 노래를 잘해야 했어요."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면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여행지는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여행지는 서른세 살 때 찾았던 핀란드 가장 북쪽의 작은 도시인 요핸수(Johansuolu)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던 시절,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담았고, 그곳에서 북해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스웨덴 테너인 유시 비욜링의 노래를 들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영국 음악은 대중화가 됐지만 북해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북극 음악'이라고도 하는데 그쪽 음악이 더 이국적이라고 할까요. 그때 쓴 일기장에 '다시는 못 올 길,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적혀 있어요." 그때 그 느낌이 옳았다. 하 교수는 지금까지 요핸수를 다시 찾지 못했다.

◆학생들, 세계를 상대로 경쟁했으면

하 교수는 스스로 '진주 촌놈'이라고 칭했다. 그는 대구 사람들도 놀리는 경남 진주 출신이었지만 서울과 밀라노에서 경쟁해 최고의 음악가가 됐고, 지금은 전 세계 테너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날 하 교수는 인터뷰 전에 한 학생이 음료수를 손에 쥐고 연습실로 들어가자 엄하게 꾸짖었다. 그는 그것이 스승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제자들의 사고가 지방대라는 지역적 한계 속에 갇히지 않도록 열어주고, 기회를 만들어 주려 노력한다. 하 교수의 연구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지구본이었다.

"하루아침에 학생들의 실력을 키워 세계 최고로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악기 관리를 세계 명문 음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입니다. 지구본을 두고 계속 학생들한테 보라고 하는 것도 세계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서울이 아니라 지역대 교수지만 세계와 경쟁했던 사람입니다. 이게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한테 가르쳐주고 싶어요."

그는 대구의 가능성도 믿는다.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이탈리아 베로나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용해 마케팅을 펼쳤고, 원형 경기장을 오페라 무대로 탈바꿈시켜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이곳에서 열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 티켓은 1년 전에 예약해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베로나 옆에는 베네치아, 교통의 요충지인 밀라노가 있어 축제가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대구에는 팔공산이 있고, 이웃 도시로 부산과 경주가 있잖아요. 많은 분이 생각을 모아 우리도 베로나를 벤치마킹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하석배는

경남 진주가 고향인 하석배는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듣고 자랐다. 초등학생 때 KBS '누가 누가 잘하나'에서 입상하며 음악적 재능을 확인했다. 경희대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 밀라노 주셉베 베르디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밀라노에서 살면서 세계 유명 성악 콩쿠르인 베르디, 비욧띠, 비냐스 등에서 우승했고, 2000년엔 유럽연합방송 주최 '세계 20인의 음악가'로 선정되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재치있는 입담으로 3년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에서 '말랑말랑한 클래식' 코너를 진행했고, 지금은 '조영남과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클래식 이야기를 풀고 있다. 현재 계명대 음악공연예술대학 학장으로 성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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