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일본 헌법 9조의 전쟁

제2차 대전에서 항복 선언을 한 히로히토 일왕의 운명은 미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 미국에선 일왕을 전쟁범죄자로 기소하고 일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반면 일본 국민들은 전쟁을 일으켰고 패전한 히로히토에 대해 여전히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미국으로선 일왕을 전범으로 처벌할 경우 다시 전쟁이라도 치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이던 맥아더는 본국에 '일왕을 전범으로 재판하면 100만의 군대를 재투입해야 할 것'이란 비밀 전문을 보냈다. 맥아더는 일왕을 처형할 경우 게릴라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맥아더가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후 300만 명에 이르던 일본군이 순순히 무장해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삼 일왕의 힘을 실감한 것은 역설적이다.

일왕제를 유지하는 대신 전쟁포기를 명기한 전후 일본국 헌법은 이런 타협의 산물이었다. 맥아더는 일왕을 상징적인 존재로 만드는 대신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과 무력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일본 헌법 9조를 관철시켰다. 이 조항은 '왕제를 유지하면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던 국제사회의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일본 헌법은 이 조항으로 인해 평화헌법이라 불린다.

지난 주말 이 일본 헌법 9조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0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가 공표한 수상예측 리스트에서 일본 헌법 9조가 후보 1위에 올랐다. 단체도, 개인도 아닌 일본국 헌법을, 그중에서도 한 조항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엔 두 아이의 엄마인 주부 다카스 나오미(37)의 노력이 컸다. 다카스는 아베내각이 지난 7월 각의 결정으로 집단자위권 발동을 용인하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하자 '헌법 9조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당초 10만 명쯤으로 예상했던 서명자는 40만 명을 넘어섰고, 이제 유력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가 됐다.

지금 일본엔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전쟁가능한 일본을 만들려는 아베의 망상이 있고 그 대척점에 '9조 없는 일본에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한 주부의 평화가 있다. 일본 헌법 9조가 노벨상을 타게 된다면 일본 국민을 대표해 아베가 수상자가 된다. 이 얼마나 상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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