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병찬(33)씨는 4일 새 스마트폰을 사려고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마음에 뒀던 신형 스마트폰 보조금이 10여만원에 불과해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한 것. 이달부터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때문이었다. 김씨는 "국산 스마트폰이 외국에서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출시되는 현 상황에서 누구를 위한 단통법인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냈다.
단통법이 이달 1일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의 불법 보조금을 차단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로 단통법이 시행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하다.
◆높아지는 소비자 불만, '누구를 위한 단통법인가'
단통법은 차별적인 지원금 지급을 금지해 건전한 이동통신 유통시장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과거에는 대리점이나 판매점마다 달랐던 휴대전화기 판매 가격이 이달부터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책정된다. 단, 유통점마다 재량으로 공시 지원금의 15%를 추가로 더 지급할 수 있다.
단통법 보조금 상한액은 30만원으로 정해졌다. 과거 법정 보조금(27만원)보다 3만원 올랐다. 여기에 유통점별로 15% 내에서 추가 지원금을 제공할 수 있어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액수는 34만5천원이다. 다만 이처럼 지원금 상한액을 다 받으려면 9만원 요금제(2년 약정·실납부액은 7만원) 이상 고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또한 이동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 등 단말기를 직접 구입하면 요금제의 12%를 할인받을 수 있으나 이 할인은 2년 약정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출시된 지 15개월이 지난 단말기는 보조금 상한선 적용을 받지 않는다.
시장 안정화라는 단통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단통법 시행 첫날인 이달 1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 간 번호이동 건수는 4천524건으로 집계됐다. 단통법 시행 직전인 9월 22~26일 일평균 번호이동 건수 1만6천178건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보조금 혜택이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가입을 보류한 것이다. 이동통신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최근 출시된 고가 스마트폰 지원금은 10만원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휴대전화 영업점 업주들도 울상이다. 한 업주는 "단통법으로 인해 어딜가나 똑같은 보조금을 받게 됐다. 영업점 간에 경쟁이 사라지면서 고객들도 휴대전화를 비싸게 사야하고 우리도 매상이 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측은 "이통사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강제하거나 휴대전화기 출고가를 내리라고 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통사나 제조사들이 지원금(보조금)을 높이던지, 출고가를 인하하지 않겠나"라는 막연한 입장이다.
◆단통법 시대, 소비자 선택은?
단통법 시행은 풍선효과를 야기하고 있다. 소비자 권익이 올라가기는 커녕 저렴한 외국산 휴대폰이나, 이동통신사를 통하지 않는 휴대전화 공기계·중고폰 구매로 몰릴 기미다.
업계는 저가 외산폰을 앞세워 가입자 몰이에 나서고 있다. 중국 화웨이의 LTE 스마트폰 'X3'의 경우 국내 출고가가 52만8천원이지만, 월정액 5만원 요금제에 가입하면 17만8만100원을 지원받아 34만9천9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X3는 5인치 HD 디스플레이, 3GB 램, 3천100㎃h 배터리를 갖춰 디스플레이 성능 등 일부 사양을 빼면 삼성·LG 최신폰과 별 차이가 없다.
소니가 최근 내놓은 엑스페리아Z3 출고가는 79만9천원으로 한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단통법 시행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산폰이 밀려드는 형국이다.
휴대전화 공기계나 중고폰도 인기가 예상된다. 공기계 경우 휴대전화 요금제에 가입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공기계를 사서 이동통신사에 약정 가입하면 매달 요금을 12% 할인해주도록 하고 있다.
2일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을 앞둔 지난달 스마트폰 공기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7% 증가했다. 11번가 관계자는"단통법이 시행되면 공기계로 가입한 이용자는 보조금 대신 요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미리 공기계를 장만하려는 수요가 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고폰도 귀하신 몸이 되고 있다. 중고폰 가입자에게도 보조금에 준하는 요금할인(최고 12%) 혜택을 주면서 수요가 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통업계에 따르면 6월 평균 17만~18만원대에서 거래되던 갤럭시S4 중고폰은 최근 21만원대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중고폰을 사기 전에는 '이동전화 단말기 자급제 홈페이지'(www.단말기자급제.한국)에서 단말기 식별번호나 모델명·일련번호로 분실 또는 도난 신고된 단말기인지 확인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최병고 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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