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말은 참 의도적이다.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데 유독 가을이 적기라는 것은 내내 책을 멀리하다 공연히 계절에다 독서를 끌어댄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제는 책 읽기이지 시간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잘 안다.
묵은 책을 정리하겠다고 여러 번 마음먹었다. 책장을 비좁게 하느니 차라리 정리해 묶어놓을 요량에서다. 차일피일하다 지난 주말 드디어 행동에 옮겼다.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 우선 정리대상이었다. 읽기 버겁거나 처음 책을 구입해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한 책들이다. 문득 '끝까지 읽는 책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쁜 일상에 쫓겨 인터넷 검색하듯 독서하는 습관이 배인 탓에 그런 의구심이 더욱 짙어졌다.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게 있다. 수학자인 조던 엘렌버그 위스콘신대 교수가 고안한 것으로 아마존닷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의 각종 온라인 통계와 자료를 활용해 잘 읽히지 않는 책을 가려내는 지수다. 스티븐 호킹스의 '시간의 약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착안한 것인데 이 책은 1988년 초판 발행 이후 1천만 권가량 팔렸지만 끝까지 읽은 독자는 6.6%에 불과했다.
데일리텔레그라프가 그저께 보도한 '끝내 다 읽지 못한 유명한 책 10위'도 각종 매체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 가운데 호킹 지수로 비교했다. 최근 국내외 언론에 크게 부각된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완독한 독자는 고작 2.4%였다. 700쪽에 달하는 분량도 벅차지만 어려운 학술서적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전문서적뿐만 아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고전 '위대한 게츠비'는 단편소설임에도 72%의 독자가 중도포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1위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장관의 비망록 '어려운 선택'(Hard Choices)이었다. 이를 완독한 독자는 1.9%에 불과했다.
요즘 국내 출판시장은 '1만 부 실종시대'로 통한다. 연간 1만 부 이상 팔리는 책이 손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2011년 1만 부 판매 서적이 244종이었으나 해마다 감소해 올해는 97종에 머물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영향도 있지만 결국 책을 멀리하는 독자와 독서 습관이 문제다. 읽을만한 책을 탓할 게 아니라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부터 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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