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말이고, 또 생각없이 불리며 일컬어지는 단어다. 그러나 조국이라는 이 두 글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제각기 강력한 작용과 위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다시 없으리라 본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믿는 것이 옳은 내 견해이고, 내 체험의 소산인 것이다."(이범석, '우등불'에서)
1900년 오늘 4대 독자로 태어난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어릴 때부터 근대적인 사고와 새로운 학문 분위기 속에 자랐다. 1915년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만나 망명을 결심, 그해 11월 중국으로 가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1916년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 군관학교에서 장교수업을 받고 기병장교가 됐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장교직을 그만두고 상해 임시정부와 논의, 만주 독립군 양성과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 그해 10월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취임했다. 당시 만주에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등 독립군이 항일 무장투쟁 중이었고, 김좌진 사령관의 북로군정서가 강력한 부대로 등장했다.
그는 북로군정서 군사교관으로 부임, 장교 육성과 부대 전투력 강화에 나섰고, 일제의 2만 만주독립군 토벌병력에 맞서 김좌진과 함께 1920년 오늘 부대를 집결, 청산리 일대 전투에서 대승리(청산리대첩)를 거뒀다. 일본군 1천200여 명 전사, 2천100여 명 부상에 독립군은 130여 명 전사, 220여 명 부상이었다. 1946년 귀국, 정부수립 직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 국군 창설에 공헌했다. 1972년 삶을 마쳤고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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