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들
이재무(1958~ )
신발장 속 다 해진 신발들 나란히 누워 있다
여름날 아침 제비가 처마 떠나 들판 쏘다니며
벌레 물어다 새끼들 주린 입에 물려주듯이
저 신발들 번갈아, 누추한 가장 신고
세상 바다에 나가
위태롭게 출렁, 출렁대면서
비린 양식 싣고 와 어린 자식들 허기진 배 채워주었다
밑창 닳고 축 나간,
옆구리 움푹 파인 줄 선명한,
두 귀 닫고 깜깜 적막에 든,
들여다볼 적마다 뭉클해지는 저것들
살붙이인 양 여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실천문학사, 2014.
사물도 오래 함께 지내면 정이 든다. 16년 동안 나를 태우고 다니던 차가 있었다. 어느 날 고개를 오르는데 힘이 달려 잘 오르지 못했다. 수명을 다한 것이다. 겨우 주차장에 세우고 폐차장에 연락하니 가져가겠다고 했다. 폐차장 직원에게 끌려서 가는 차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 적이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신발장에서 수명을 다한 자신의 신발들을 보며 자신과 동일시한다. 신발이 곧 자기 자신인 것이다. 저 신발을 신고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세상이라는 바다를 떠돈 지난 세월을 생각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구절은 '위태롭게 출렁, 출렁대면서'다. 제목 폐선과도 연결되는 이미지다. 화자와 함께 험한 세상을 함께하다가 망가진 신발을 험한 파도를 헤치며 바다를 떠돌며 고기잡이하다가 수명을 다한 폐선에 비유한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바다는 정의롭게 살면서 먹이를 구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함께 위태롭게 출렁대다가 지금은 적막에 든 폐선 같은 저 신발들을 쉽게 버릴 수 없는 화자의 정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권서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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