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스럽던 폐'공가의 변신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동네 주민들이다. 꼭 필요한 시설이 생겨 편리해졌고, 동네 분위기도 한결 밝아져서다. 덩달아 집주인들도 골칫거리를 시, 구청이 무료로 허물어주고 재산세 면제까지 해주는 데다 자신의 땅이 일정기간 공익 목적으로 사용돼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빈집에 들어선 주민편의시설
대구 북구 산격1동 구암서원 남쪽 주택가. 5m 폭의 가파른 언덕길 중턱엔 10년 넘게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 있었다. 집주인이 이사하고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자 이곳엔 거미줄이 쳐지고 쓰레기가 쌓였다. 밤이면 고양이가 우글거리고 청소년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행인이 버린 담배꽁초 등으로 화재 위험까지 있었다. 이에 북구청은 올해 초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 집을 허물고 6대의 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었다. 유영자(54) 씨는 "골목 오르막길이 좁고 가팔라 차를 집에서 수십m 떨어진 곳에 주차해야 했다. 집 바로 앞에 주차장이 생겨 편리한데다 골목을 채웠던 불법주차도 사라졌다"고 했다.
포항시 해도동주민센터와 개발자문위원회도 동네에 방치된 연립주택의 소유자와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뒤 5년간 무상 임차하기로 하고 건물을 허물었다. 포스코 제선부와 환경자원그룹은 지역협력사업의 하나로 이곳을 주민의 요구에 따라 42면의 무료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주민 정순자 씨는 "주차 공간 부족으로 동네를 몇 번 돌아도 차 댈 곳을 찾지 못했는데, 이런 좋은 공간이 만들어져서 동네가 밝아지고 깨끗해졌다. 정말 고맙다"고 했다.
대구 중구청은 지난해 9월 대봉2동 골목의 폐가를 허물고 공터(152㎡)에 생활체육기구 5개를 설치했다. 이후 이곳은 동네 주민이 하나둘 모여 운동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 됐다. 김일용(72) 씨는 "운동시설이 생기니 신천까지 가기 어려운 노인들이 오가며 운동을 한다"고 소개했다. 안성희(30) 씨는 "주위에 여섯 살 딸아이가 놀 만한 공간이 부족한데 이런 곳이 생겨 다행이다. 매일 오후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면서 20~30분씩 함께 운동을 하니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수성구 범어4동엔 텃밭이 생겼다. 폐가를 허문 땅엔 인근 주민들이 협의해 서로 구역을 나눠 배추와 상추, 무, 파 등을 키우고 있다. 이승길(72'수성구 범어4동) 씨는 "5년 전 집주인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간 사이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나 집이 새카맣게 타버렸다"며 "그 후 집이 비면서 각종 쓰레기가 넘쳐나 악취까지 풍겼다. 집을 허문 자리에 텃밭이 생기니 풍경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채소를 재배할 수 있어 좋다. 아침이면 물을 주러 나온 주민끼리 인사를 나눈다"고 했다.
◆개'보수 통해 저소득 가정 보금자리로
폐'공가를 허물지 않고 이를 보수해 저소득 가정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사업도 있다. 도심 미관 개선과 복지 수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셈이다. 이 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별도의 예산 편성 없이 '해비타트'(habitat'무주택 서민의 주거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 민간운동단체) 등 지역의 봉사단체와 민간 기부 등을 활용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동구청은 지난해 6월 빈집을 리모델링해 시댁 외조모를 모시고 아들 셋을 키우는 여성 가장(35) 등 2가구에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올 7월 네 번째 입주식으로 이어졌고, 다음 달엔 또 하나의 '행복둥지'가 탄생한다.
동구청은 집주인으로부터 3년간 무상으로 빌려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들이 살 동안 각종 보수도 무료로 해준다. 동구청 관계자는 "입주자는 3년 동안 월세를 내지 않지만 대신 매달 5만~15만원의 저축을 하게끔 해 이 돈이 집을 떠나야 할 때 전세나 월세를 얻는 종잣돈이 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남구청도 지난해 11월 똑같은 방식의 '희망보금자리' 사업을 벌여 다음 달 네 번째 입주식을 치를 예정이다. 이혼 후 두 자녀를 돌보는 모자 가족,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필리핀 여성과 두 아이, 간암과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과 노인성 질환이 있는 부인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도시재생사업과 연계 필요
폐'공가 정비사업은 집주인이나 동네 주민들의 골칫거리를 동시에 해결해줘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중구 대봉동의 주택 소유자 A(50) 씨는 "집이 낡아 세가 안 나가서 오랫동안 집을 비워둬야만 했다. 이 집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구청이 집을 허물어주고 재산세까지 면제해줘 앓던 이를 빼는 기분이었다. 무료 임대기간이 있지만 동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쓰이고, 임대기간이 끝나면 재산가치 상승도 기대해 볼 수 있어 집주인으로서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고 했다.
대구 곳곳에 분포된 폐'공가는 대부분 오래돼 개'보수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집주인이 이를 미루거나, 부모로부터 집을 물려받았지만 사는 곳이 따로 있어 내버려둔 경우가 많다. 이런 주택들은 매매도 잘 이뤄지지 않아 장기간 방치되기 일쑤다. 폐'공가 정비사업은 이런 집주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무료 철거에 재산세 부담까지 덜어줘 신청이 잇따르는 등 집주인의 관심이 높다.
더욱이 3년 임대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고, 그 이전이라도 원한다면 계약해지가 가능해 집주인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다.
이처럼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이지만 이를 확대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많다. 아직 재산권 행사에 침해를 받는다는 인식이 있어 동의를 꺼리는 집주인들이 있다. 동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집주인의 재산이 압류를 당하거나 그 집에 저당권이 설정되면 공간 활용 자체가 힘들 수 있다.
3년의 임차 기간이 짧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시는 앞으로 5년을 임차 기간으로 정하고 대신 임차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내년에는 60동 중 5년 이상 임차가 가능한 곳 일부에 대해 소유주에게 임차료를 지급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임차료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연 0.5%로 잡았고 구도심의 165㎡ 주택을 가정하면 한 곳당 5년 동안 300만~500만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최병우 대구주거복지센터 소장은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폐'공가 정비사업을 지속하려면 지구단위의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야 한다. 마을 단위로 묶어서 정비하면 도시재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마을 단위로 협력체가 꾸려지면 조성부터 관리까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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