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랩의 전격 소통 작전!' 대구 공연

랩의 리듬 탄 시, 그 기묘한 궁합은 '낭독'

시와 랩의 만남 공연을 펼치고 있는 포에틱 저스티스. 왼쪽부터 김봉현 대중문화비평가, MC 메타, 김경주 시인.
시와 랩의 만남 공연을 펼치고 있는 포에틱 저스티스. 왼쪽부터 김봉현 대중문화비평가, MC 메타, 김경주 시인.

시(詩) 낭독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퍼포먼스와 미장센(무대 위의 시각적 요소)으로 무대를 채우고, 즉흥 및 우연적 요소로 생기를 불어넣으며, 무엇보다도 시를 읽어내는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한다. 최근 시와 랩(rap)의 만남에서 발견된 요소들이다.

언뜻 보기에 시와 랩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는 문학이며 비교적 차분하고, 또 하나는 음악이며 비교적 격렬하다. 그러나 시와 랩은 실은 뿌리가 같고, 그래서 만나면 서로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낭독'은 그 연결고리다.

◆시와 랩, 랩과 시, 그 접점에서 낭독의 미학을 찾다=최근 시인과 래퍼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팀이 대구를 찾아 낭독 공연을 가졌다. 이달 18, 19일 대구 중앙로 복합문화공간 '소셜마켓'에서 '더폴락' 주최로 열린 '시와 랩의 전격 소통 작전!'이다.

공연을 펼친 이들은 '포에틱 저스티스'(Poetic Justice)다. '시적 정의'라는 의미의 팀명을 내세워 시와 랩 각각의 멋을 느끼고, 동시에 서로의 접점을 찾는 프로젝트 팀이다. 순수문학계에서는 이례적으로 30쇄 이상을 찍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의 시인 겸 극작가 '김경주', 힙합 듀오 '가리온' 소속 한국 1세대 래퍼 'MC 메타'(이재현), 힙합 전문 대중문화비평가 '김봉현'으로 구성됐다.

포에틱 저스티스는 3개의 낭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첫 번째 무대에서는 김경주가 자신의 시 '당신의 눈 속엔 내 멀미가 산다' '바늘의 무렵' '나쁜 피'를 낭독하면, MC 메타가 이 시들을 다시 랩으로 내뱉는 무대를 번갈아가며 진행했다.

두 번째 무대에서는 김경주가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는 생소한 스타일의 시 낭독 무대를 펼쳤다. 김봉현은 "보통의 시 낭독보다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줄여서 '슬램'이라고도 불리는 포에트리 슬램은 1984년 미국에서 탄생했다. 정기적인 경연 대회도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1년 전후로 전국 곳곳에서 동호인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소모임과 워크숍 등을 열며, 문학이나 연극과도 연결점을 찾고 있다. 김경주는 차분하게 출발한 시 낭독을 점점 거칠게 고조시켰고, 미묘한 라틴풍의 기타 연주와 촛불, 가면 등의 소품으로 무대를 꾸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세 번째 무대는 '랩 드라마'로 꾸며졌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주제로, 극작가이기도 한 김경주가 자신의 시와 MC 메타의 랩을 극 구성으로 소화했다. 다양한 힙합 리듬을 깔고, 그 위에서 김경주와 MC메타가 번갈아가며 시와 랩으로 구성된 대본을 읊는 형식이었다. 3개 무대 모두 기존의 시 낭독 및 랩 공연과 차별되는, 실험적인 시도로 큰 박수를 받았다.

◆'낭독의 시대' 새로 열자=포에틱 저스티스 멤버들은 시와 랩의 공통분모와 차이점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우선 공통분모는 산문과 달리 압축과 운율(rhyme, 라임)이다. 또 둘 다 음악적이다. 시는 내재된 선율(내재율)을, 랩은 비트(beat)라는 리듬을 바탕에 깐다.

차이점도 있다. 랩은 흑인들이 차별과 가난으로 얼룩진 슬럼가에서 탄생시킨 만큼 저항적이고 자기 고백적이다. '은유조차 직설적인' 랩과 달리 시의 언어는 어딘가에 부딪히기보다는 퍼지고 흩뿌려져 머금거나 묻어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에서 시와 랩 서로 진화를 위한 힌트를 엿볼 수 있다는 것.

김경주는 앞으로 시가 특히 중요시해야 할 요소로 '소리'를 꼽았다. 지금까지 랩은 그것을 읊조리는 소리로 주목받은 반면, 시는 텍스트 그 자체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시 역시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핵심 요소는 '호흡'이다. 김경주는 "희곡과 대본을 쓸 때 무엇보다도 실제 공연에서 배우들에 의해 구현될 목소리를 염두에 둔다"며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이 텍스트로 짜 놓은 호흡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독자가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호흡도 다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의 요소인 '메타포'(metaphor'은유)에서 래퍼명을 따 온 MC 메타는 '절충2'(2003)라는 힙합 프로젝트 앨범에 '바람코지'라는 곡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이 곡에서 MC 메타는 랩보다는 시 낭독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단 한 번에 목소리 녹음을 마친 이 곡에서 그는 '시 낭독의 즉흥적인 호흡 디자인'이라는 요소를 발견했고, 이후 흐름을 타고 이번 공연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대구가 고향인 MC 메타는 경상도 사투리로 '무식하게 밀어붙인다'는 뜻의 '무까끼하이'라는 곡으로 2012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을 수상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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