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서상만(1941~ )
나 없는 이 세간
홀로 병들어, 사는 재미없이
고생할까 해서
나 당신을 천국에 먼저 보냈네
어느 해거름
함께 갈까도 마음먹었지만
하늘이 가당찮다 하였네
곧 따라갈 테니
그동안 도원(桃園)에서 기다리게
혹, 너무 늙어서 가면
나를 알아나 볼까
-시집 『백동나비』, 서정시학, 2014.
오랜 세월 반려자로 살다가 먼저 천국에 간 지어미를 생각하는 늙은 지아비의 독백이다. 목소리가 담담하고 평온한 가운데도 깊이 모를 세월을 느끼게 한다. '어느 해거름/ 함께 갈까도 마음먹었다'는 시행에서 정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나란히 걸어가는 다정한 노부부상도 떠올릴 수 있겠다.
부부가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젊은이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부부싸움이라는 것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다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감히 부부싸움이라는 말이 존재하고, 마침내 부부싸움 끝에 헤어지는 부부의 수효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말하는 사랑이란 미지의 이성에 대한 신비나 호기심 같은 것은 아닐까. 결혼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 대한 신비가 사라지면 부부라는 앙상한 관계만 남아서 갈등을 겪는 것은 아닐까. 부부란 금 간 항아리를 마주 잡고 깨지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 했던 어떤 지혜로운 이의 말이 떠오른다. 이미 금 간 항아리지만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 배려하며 애쓰며 노년에 다다른 부부는 아름답다. 서로의 이마에 땀을 닦아주며, 수고했다고 하고, 고요한 시선으로 서로의 흰머리를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권서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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