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수평선

수평선

손택수(1970~ )

무현금이란 저런 것이다

두 눈에 똑똑히 보이지만

다가서면 없다, 없는

줄이 퉁 퉁

파도소리를 낸다

시퍼런 저 한 줄

양쪽에서 짱짱하게 당겨진

밤이면 집어등이 꼬마전구들처럼 켜져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는

저 한 줄, 바다 한가운데 드니

구부러져 둥근 원이 되었다

아득하게 트인 감옥이 되었다

배가 바다의 배에 배를 얹고

젖을 빨다 까무룩

잠이 든다

-, 2012. 1.

가야금은 사람이 줄을 퉁겨서 소리를 낸다. 시인은 수평선을 줄 없는 가야금에 비유했다. 수평선이라는 줄이 있긴 하지만 가까이 가 보면 줄은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들린다. 줄 없는 악기가 연주하는 음악이 파도소리라니 놀라운 발견이다.

수평선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려 수평선 가까이 가면 수평선은 사라지고 '아득히 트인 감옥'이 된다고 했다. 감옥은 폐쇄된 공간인데 트인 감옥이라니 보통의 역설이 아니다. 가야금 소리는 사람의 음악이지만 줄 없는 수평선이 연주하는 음악은 자연의 음악이기에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감성은 섬세하면서도 경이롭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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