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역에서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다. 경주 사람이 화장실을 지으려고 자기 집 뒷마당을 파다가 문화재 한 점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1천 년은 훨씬 넘은 듯한 신라시대 물건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문화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문제의 답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파묻는다'이다. 유물 발견이 알려지면 문화재 발굴로 수십 년간 처음 계획한 화장실은 터 닦기조차 할 수 없다. 찬란한 신라문화의 유산도 좋고 민족의 자긍심도 좋지만 문화재 때문에 비가 새도 지붕조차 제대로 못 고치는 경주 사람들에게 문화재는 골칫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주시민들이 모두 문화재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신라 천년 고도로서 경주시민들이 갖는 자부심도 높고, 문화재야말로 경주를 우리나라 대표 문화관광도시의 반열에 올려준 중요한 자원임을 모르지 않는다. 경주시민에게 문화재는 선물임과 동시에 족쇄인, 애증의 대상인 셈이다.
◆끝나지 않는 문화재 발굴
현재 경주에서 진행 중인 국가 주도 문화재 발굴은 경주시 황오동과 황남동, 인왕동 일원 38만4천여㎡ 규모의 쪽샘지구가 있다. 이곳은 4~6세기에 걸친 신라 왕족 및 귀족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15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됐으며, 고분에서 3천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2년 쪽샘지구 문화재 복원 사업을 발표하고, 2006년까지 680억원을 투입해 해당 지역 토지를 모두 매입했다. 이후 2007년 7월부터 매년 18억원가량을 투입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독점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7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고작 23%인 3만6천550여㎡가 완료됐을 뿐이다. 쪽샘지구 발굴계획은 2030년에나 마무리될 예정이다.
경주 지역에서는 올 초 인왕동 일원의 월성지구 발굴 계획도 발표됐다. 월성은 이름 그대로 과거 신라시대 궁성이 있던 곳이다. 신라시대 행정'문화가 집약된 곳인 만큼 발굴 예상 유적만 해도 타 지역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대상지역 역시 49만5천여㎡로 지금까지 발굴 사업 중 가장 큰 범주에 속한다. 이달 17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월성지구 중 일부를 단독 발굴하기로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 계획이 세워지지 않아 언제 완료될지 기약할 수 없다.
◆대규모 동시 발굴 이뤄져야
이처럼 문화재 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경주지역의 불만은 점점 고조돼 갔다. 이에 지난달 20일 새누리당 정수성 국회의원(경주'산업통상자원위원회)은 시민들의 뜻을 모아 경주 문화재 발굴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문화재청이 법인으로 허가해 준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기관이 경북에만 18개가 있는데 특정단체(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만 발굴 작업을 몰아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기관으로 전락해 본연의 임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있다. 발굴기관을 동시 투입해 조속히 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러한 일들이 반복돼 경주시민들이 계속 피해를 받는다면 문화재청의 발굴정책과 특정단체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 청구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 훼손 우려' 고고학회 반발
정 의원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한국고고학회'한국고대사학회'한국역사연구회'한국상고사학회'중부고고학회'호서고고학회'호남고고학회'영남고고학회'백제학회'신라사학회'한국고대학회 등 11개 국내 고학회는 공동성명서를 배포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여러 기관이 투입돼 통일된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발굴조사에서 오히려 문화재 파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또 "신라 왕경의 복원사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돼야 하며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중국은 진시황릉의 발굴을 수십 년간 진행하고 있고, 일본의 나라현 고대 도성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역시 마찬가지"라며 "문화재 발굴조사는 그 행위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며 학생과 시민이 참여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과거와 미래가 함께 존중되는 문화재 발굴
정치권과 고학회의 대립을 지켜보는 경주시민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국가기관이 주도한 체계적 문화재 발굴의 당위성은 공감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피해에 대한 대책 또한 절실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관한 경주시민들의 애증의 심정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경주문화원 김기조 원장은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경주시민들은 신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고, 그에 따른 피해도 어느 정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며 "과거보다 문화재 발굴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사라졌다. 복원'정비사업이 활발히 추진된다는 소식에 모두 환영하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다만 국가기관이 지도'감독하는 컨트롤타워 아래 다양한 전문기관이 공동 참여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투명한 발굴조사가 진행돼 과거도 존중되며 현재와 미래도 함께 존중되는 문화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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