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경제 활성화의 한 방편으로 규제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도 정부의 규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 개혁'이란 용어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기업 활동과 관련된 행정의 총체적 혁신을 말하는'행정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저성장의 덫에 갇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산업 팽창의 시기와는 달리 성숙된 산업사회에서의 경제 성장은 만만치 않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분야 중의 하나로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와 행정의 본질적 관계를 살펴보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은 법적 규제뿐만 아니라 인허가 행정과 기업지원서비스 행정도 포함된다.
잘못된 규제는 시장경제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단말기 소비가격을 낮추겠다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시장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다. 그러나 소비자 혜택은 더 줄었다. 다수의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다 파악하지 못한 채 행정만능주의적인 규제를 만들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대표적 규제 실패 사례다. 시장경제질서 메커니즘에 영향을 줄 수 있거나 기업의 새로운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는 신중해야 하며 최소한이어야 한다.
기업의 투자 활동과 관련된 인허가 행정은 법적 규제보다 기업 활동을 더욱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투자 활동 중 토지의 이용과 건축 행위는 모두 인허가 대상이다. 기업을 포함한 민간이 행정에 대해 가장 분통 터지는 분야가 바로 이 분야다.
필자가 대구시 감사관으로 근무한 기간 동안 가장 안타까운 경험이 하나 있다. 지역의 한 의약품도매상은 물류의 효율성과 창고현대화를 위한 의약품 창고를 신축하기 위해 모 구청에 건물신축허가를 신청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깊이 검토한 결과 관련법상 신축허가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허가가 수리되지 않자 그 기업은 할 수 없이 담당직원이 해석하는 허가요건에 맞는 기형적 건축물을 지어야 했다.
모든 인'허가 업무는 담당공무원이 관련 법령을 해석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이 담당 업무관련 법령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법해석을 제대로, 적시에 해 줄 수 있는 조직적 시스템도 없다. 민원인과 법해석에 이견이 있을 경우 유권해석을 받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유권해석 신청에 대한 중앙부처의 답은 항상 뻔하다. 그것은 중앙부처의 유권해석 담당공무원의 법해석 능력의 문제와 자세의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인'허가를 신청한 당사자는 애간장이 탄다. 때로는 정당하게 인'허가를 받아야 함이 마땅한데도 인'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지체되어 기업의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행정조직 내에 법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해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중앙부처가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중앙부처의 변화만 바라보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일선에서 법을 집행하는 지방자치단체라도 하루빨리 그러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행정서비스의 개선도 중요하다. 최근 대구시의 '행정개혁'모범사례가 있다. 옛 대동은행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은 빌딩을 리모델링해 객실요금 10만 원대의 비즈니스호텔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빌딩은 학교 정화구역 안에 있었다. 지난 4년간 전국적으로 학교정화구역 안에서 호텔건립사업이 무산된 91건의 사례가 말해주듯 심의를 통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인'허가권을 가진 기관이 아니면서도 시장의 적극적인 관심과 공무원들의 발품으로 심의가 통과되도록 했다. 이것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행정서비스다.
규제 개혁의 대상이 법적 규제에만 그치면 안 된다. 제도적인 규제 개혁과 더불어 인'허가 행정의 개혁과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 행정의 개혁도 필요하다.
행정 조직과 공무원 사회에 던지는 화두로도 약하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행정의 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며, 그것은 '규제 개혁이 아니라 '행정 개혁'이어야 한다.
강병규/세영회계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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