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겨울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미술관은 '포스트모더니즘: 양식과 전복 1970-90'이라는 제목의 야심적인 전시를 기획했다. 당시 크게 붐이 일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을 되돌아보고 정리와 평가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전시 도입부에 의자를 불태우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기록한 필름을 상영했다. 다소 충격적이고 비장함이 감돌게 했던 영상이 전한 문화적 메시지는 기존 예술양식 체제와 미학적 가치들을 완전히 전복시키자는 것이었다. 대략 1970년대 이래의 디자인과 건축분야를 중점으로 조명하면서 음악과 대중문화 전반에 나타난 혁신적인 변화들을 소개해 나갔다.
1960년대 미술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이유는 달랐지만 기존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관념성과 현실과의 소통 부재에 대한 반발이 컸다. 전후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는 내향적 성격으로 인해 현실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형식상의 표현행위만으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증언하며 존재의 더 깊은 울림을 들려줄 수 있다고 믿었다. 작품의 형식 자체를 탐구했지만 대중적 욕망이 바뀌고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소통이 필요했던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를 개발해야 했다.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 등장해 그런 변화를 주도했지만 무엇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즉각적으로 시도한 가장 감각적인 스타일을 채택한 것은 팝아트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은 '팝아트의 신화'를 주제로 특별전을 열었다. 통상 앤디 워홀 같은 미국 작가 위주로 구성된 전시를 대하다가 유럽미술관의 관점에서 조망된 새로운 시각의 전시회를 보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초기 영국 팝아트와 미국 판 팝아트를 비교할 수 있었고, 국제적으로 확대된 팝아트의 영향력을 21세기 시각으로 재평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어 야심 차 보였다. 세계 50여 곳 이상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터로부터 100점 이상의 중요 작품을 대여했다. 이미 신화가 된 전설을 뒤집고 그로 인해 가려졌던 이면을 드러내 다시 한 번 재정의 해보겠다는 기획의도였다.
때마침 같은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미술관에서는 영국 팝아티스트 리차드 해밀턴의 회고전을 개최하고 있었다. 앞서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개최했던 것이지만 대규모 회고전이 옮겨와 열리고 있어 그동안 팝아트에 대한 일방적이고 좁은 이해를 풍부하게 했다. 리차드 해밀턴은 팝아트의 중심인물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영국작가다. 상업적인 장식과 복제 수단 위주로 손쉬운 다작을 선호하는 일부 팝아트 작가와 달리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패러디를 중심에 두고 팝아트 본래의 대중지향성을 당당하게 추구해 나갔다. 특히 그의 만년에 제작된 진지하고 충실한 회화는 대중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수단으로 복제의 상업적 방법을 채택했을 뿐 회화에 대한 진지한 믿음은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게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대중의 정치적 역량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많이 활용하고 사진 위에 다시 채색하는 이중의 손질을 통해 개성의 복귀를 기대한 것, 그리고 회화의 진지함을 추구하는 것 등을 통해 팝아트가 가볍고 장식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든가 또는 그저 재미있는 농담의 미술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줬다. 테이트모던에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이기도 하면서 팝아트 작가인 시그마 폴케전도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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