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1912~1996)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정본백석시집』, 고형진 편, 문학동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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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다. 눈이 내려서 나와 나타샤가 만난 것이 아니라, 나와 나타샤가 사랑하기 때문에 눈이 내린단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거란다. 백석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눈 내리는 밤을 사랑하는 이와 마가리(오두막)에서 보낸다는 것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그때 시인의 친구인 당나귀가 축복해 준다면 더 행복하리라. 당신의 나타샤는 어디에 있는가?

권서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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