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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읽어주는 남자] 스티비 원더 - 송즈 인 더 키 오브 라이프

질 좋고 양 많고 맛도 다양하다. 죽여주는 뷔페 맛집일까. 그런 흔치 않은 앨범이 있다. 미국 흑인음악 뮤지션 스티비 원더의 '송즈 인 더 키 오브 라이프'(Songs In The Key Of Life'1976)다. 음반 2장에 21곡을 담았고, 평단에서는 스티비 원더의 전성기인 1970년대 내에서도 최정점에 있는 작업물로 꼽는다. 수록곡 중 스티비 원더가 딸 아이샤 모리스의 출생을 기념해 만든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가 가장 유명하다. 아이샤 모리스의 옹알이를 녹음해 넣은 '원조 딸바보 노래'다. 일단 달콤한 행복의 맛 하나.

소울과 훵크에 치중하던 스티비 원더는 1975년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소속사 모타운과 새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는 작정한 듯 다양한 장르를 담은 이 앨범을 내놓는다.

우선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되짚는다. 딕실랜드 재즈 '서 듀크'(Sir Duke), 가스펠 소울 '러브즈 인 니드 오브 러브 투데이'(Love's In Need Of Love Today), 퓨전 재즈 '컨튜전'(Contusion)이 그렇다. 유럽의 고전 음악도 가져다 쓴다. '패스타임 파라다이스'(Pastime Paradise)는 귀에 남는 멜로디의 현악이 주도하는 가스펠 곡, '빌리지 게토 랜드'(Village Ghetto Land)는 바로크 음악을 전자음으로 구현한 곡이다. 제3세계 음악에도 애정을 쏟는다. 삼바 리듬을 가미한 '애즈'(As), 살사의 열정을 녹여냈으며 2010년 내한 공연 때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어우러져 신명나는 무대를 선보였던 '어나더 스타'(Another Star)다. 고전의 풍미와 이국적 재료 추가.

이 앨범은 스티비 원더의 신디사이저(synthesizer·음을 자유롭게 합성할 수 있는 전자 악기) 연구 명작이기도 하다. 그는 흑인음악에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1972년 작 '뮤직 오브 마인드'(Music Of Mind) 앨범쯤부터 신디사이저 실험을 시작한다. 앞서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즈는 밴드 체제에서 구사할 수 있는 소리의 조합들을 가득 구축해놓았다. 그 너머의 소리도 갈구하던 팝계에 스티비 원더는 신디사이저로 1인 오케스트라를 구축해 완성도 높은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다. 바로 이 앨범이다. 지금 흑인음악은 록과 함께 빌보드 차트를 양분하고 있다. 특히 1인 프로듀서 체제로 다양한 악기와 음악 장비를 다루며 자기 색깔을 표현하는 흑인음악 뮤지션들이 득세하고 있다. 그런 풍토를 만든 선구자가 스티비 원더다. 그를 서울 신당동의 전설적인 떡볶이 대모, 고(故) 마복림 할머니에 비유해 본다. 둘 다 혁신적인 레시피(조리법)를 남겨 지금 우리의 혀와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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