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저술 중 동아시아 유교 문화에 영향을 많이 끼친 책으로 '주자가례'를 빼놓을 수 없다. 유교의 종교적 의례를 말하면 '관혼상제'(冠婚喪祭)를 들 수 있는데, 이 의례의 집행 여부가 유교가 얼마나 토착화되고 확산되었느냐의 척도가 된다. 이 척도는 한'중'일 세 나라가 다른데,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중기에 토착화되어 한국문화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 예교의 관습, 생활화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땅이 넓고 왕조가 이민족에게 망하기도 하여 예교의 지속성이 우리나라만큼 강하지 못하고, 일본도 조선조처럼 주자학 일변도나 과거제에 의한 양반 계급의 고착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나라처럼 철저하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성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관혼상제를 비롯한 의례(儀禮)와 예절에 대한 학문적 연구 및 토론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의례를 두고 당파 싸움까지 하였다.
'주자가례'를 모범으로 중국의 관혼상제를 조선조에서 받아들여 시행하면서 중국의 풍토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고, 또 구체적 적용에 있어서 의문이 생기게 되어 결국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한 관혼상제, 즉 사례(四禮)를 만들게 되었다. 그 책이 '사례편람'(四禮便覽)이다. 관혼상제에 관한 한국식 매뉴얼인 셈이다. 오늘날 '가정의례'의 의식(儀式)과 시행세칙은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고, 거기에 한국인의 사회생활상에서 만들어진 관습이 더하여진 것이다. 이 의례는 과거 농경사회 기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화 이후 농촌인구의 감소로 그 기반이 무너지고, 산업화와 도시화, 거기에 따른 개인주의 의식의 보편화, 직업의 분화, 가족제도의 큰 변화, 또 다종교사회의 등장 등이 이어지며 이 의례는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옛 양반가문의 전통 존중 의식(意識), 신분 상승 의식 등에 의해 이 예교가 아직 잔존하고 있다. 한때 '가정의례준칙'이 공포되어 강제로 상례(喪禮)의 몇몇 관습은 금하기까지 하였다.
이 책은 모두 5권인데, 통례(通禮)에서 사당(祠堂)제도, 심의(深衣)제도를 논하고, 관례(冠禮)에서는 남자의 성인식과 여성의 성인식, 곧 계례(비녀를 꽂음)를 설명하고, 혼례에서는 결혼예식, 상례에서는 장례의식, 그리고 제례에서는 제사의식을 논하고 있다. '사당'은 양반가에서 조상의 신주(神主)를 4대조까지 모시는 일종의 개인 신전(神殿)이다. 심의는 양반이 집안에서 입는 평상복으로 흰옷에 흑색 단(테두리)을 댄 옷이다. 흑백의 대비에 의해 단순성, 순수성, 신성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종교의복이다. 네 가지 중 '상례'가 제일 복잡하고 번잡하다. 이는 옛사람의 생사관과 관계가 있다.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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