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옆집의 숟가락은 언제쯤 셀꼬

▲권영시
▲권영시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

이런 말은 비단 옆집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이웃 모두 함께 지내는 막역한 사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생활상은 물론 정보가 훤하고도 남음이 있고, 이 정도라면 사심 없이 드나드는 퍽 개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개방은 차츰차츰 사라지고, 정보화 시대라는 물결 속에 정보공유는 개방적이라 할지라도 인적 대화는 단절되는 면도 없지 않아 불통을 낳은 게 아닌가 여겨진다.

아버님은 아침마다 대문을 먼저 열어 놓으셨다. '사람 집에는 사람이 드나들어야 한다'는 일관된 논리가 그 바탕이었다. 당시만 하여도 아침이면 밥그릇 통통 두들기며 어린아이까지 동반한 걸인이 자주 들랑거렸다. 그들에게는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곤 했지만 이러한 대문 열어 놓기는 어쩌면 개방이자 배려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은 하늘 찌르듯 높이 치솟고, 다닥다닥한 주택은 높은 담장에다가 쇠창살까지 빼곡한 집도 있다. 대문은 또 어떤 역할을 하는 게이트이기에 왜 그렇게도 거창한지 모를 일이다. 업무 공간인 빌딩 역시 키 높이 하듯 경쟁적이다. 거기다가 파티션을 친 칸막이 공간은 전문성과 성과주의라는 면에서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게다. 컴퓨터에 의존해 밀폐라는 공간을 낳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에 예속된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앉은 사람은 앉은 채로, 서 있는 사람은 선 채로 비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두뇌가 점령당했나? 예의는 간곳없고 양보와 배려 앞에서 고개만 내려놓기 일쑤여서 그렇다.

다닥다닥도 밀폐 공간의 한 부분일까, 지난 10일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도 그랬다. '동아줄 의인'도 있었지만 건물이 가깝다 보니 쉽게 번져 인명과 재산상 많은 피해를 입혔다.

소방도로와 시장통로는 물론 인도에도 차가 버젓이 버티거나 가판대는 제자리인양 그런 모습 볼 테면 불통은 소통 앞을 벗어나지 못하며 밀폐의 공간에서 머뭇거리는 현상과 마찬가지리라. 최근의 살인사건도 원인이야 따로 있겠지만 이러한 사건을 접할 때면 밀폐의 공간과 소통 부재는 아직도 불통의 연장 선상으로 여겨져 씁쓸하다.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많은 공간에서 밀폐와 불통이 공존했던 만큼 이를 근원지로 소통이란 용어가 급부상하지 않았을까. 밀폐의 공간을 탈출하자. 개방공간은 살아 있어서 밝고 따뜻하며 후회 없는 스테이지이리라. 옆집에 숟가락은 언제쯤에나 셀 수 있을꼬.

<시인·전 대구시앞산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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