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마리 앙투아네트

청와대 문건 유출 및 권력 암투설을 놓고 '십상시'(十常侍)라는 단어가 회자됐다. 십상시는 중국 한나라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국정을 농단한 10명의 환관을 말한다. 그러나 십상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다. 그 진실성 여부는 논외로 치더라도 십상시에 비유된 이들의 입장에서는 여간 기분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하고많은 비유 중에 하필이면 '고자'라니! 우스갯소리로 "나의 생식기능은 정상"이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이가 나올 법도 하건만 그런 이는 아직 없다.

역사를 보면 억울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랴. 로마를 불태운 것으로 알려진 로마황제 네로가 대표적이다. 희대의 폭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적어도 로마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화재가 났을 때 그는 로마에서 80㎞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화재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와 진화를 지시했다. 그가 로마 방화자라고 소문난 것은 정적들의 마타도어 때문이었다.

굶주린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이세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더 억울한 경우이다. 이 말 때문에 그녀는 서민들의 고통과 세상 물정 모르는 불통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그녀는 굶주리는 거리의 아이들을 보고 "저 아이들에게 빵을 주세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정적들은 이 말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퍼뜨렸다. 프랑스의 적대국(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녀는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그녀는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음탕녀라는 악의적 선전에 시달렸다.

앙투아네트는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1782년 궁정음악회에 온 여섯 살 모차르트가 넘어지자 일으켜주었고 즉석에서 이 음악 신동의 청혼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머무는 궁을 시골처럼 꾸며놓고 전원생활을 즐겼다. 사형장에 끌려간 그녀는 사형 집행인의 발을 실수로 밟고서는 "미안해요. 일부로 그런 것은 아녜요"라며 미안해했다. 그러나 흑색선전에 물든 시민혁명군들의 증오는 상상을 초월했다. 단두대에서 처형될 때 그녀는 칼날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끔 하늘 쪽을 향해 눕혀졌다는 설마저 있다.

세상을 등진 지 200여 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녀는 불통의 아이콘으로 다시금 오해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풍자하는 말로 그녀의 이름을 빗대어 '말이 안통하네뜨'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덤 속의 앙투아네트가 통탄할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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